지난 19일 국회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 직후 청와대가 강력 반발하고 22일엔 정진석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거부권은 금기가 아니다”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거론한데 이어 범 여권 차원의 ‘위헌 논란’ 공론화 작업이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헌법학자 출신이자 현 정부에서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정종섭 새누리당 국회의원 당선자는 23일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여러 논란 가운데서도 가장 명확한 것은 ‘소관’ 현안 조사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언제든 청문회를 열 수 있도록 한 것”이라며 “소관이란 개념이 너무 광범위해서 행정부에 큰 혼란을 가져올 수 있다”고 밝혔다. 정 당선자는 “외교통일위원회를 예로 들자면 소관 현안을 조사하기 위해 외교부나 통일부 관계자를 모두 불러 조사할 수 있다. 공직자들뿐 아니라 이해 관계자들도 마찬가지”라며 “이건 그야말로 공무원들 일 하지 말라는 것이다, 행정부를 마비시키는 법으로 입법부 독재·의회 독재란 비판이 쏟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위헌 여부와 관련해 정 당선자는 “이 법안은 행정부를 전방위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며 “대통령 중심제 하에서 과도하게 행정부 영역을 침해할 수 있는 만큼 위헌 소지가 꽤 크다. 의원내각제 국가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법”이라고 지적했다.
개별 의원이 아닌 새누리당 차원에서도 대책 마련이 강구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법률지원단 차원에서 대책을 숙의중인 것으로 안다”며 “헌법학회 등 전문가 그룹에게도 자문을 구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날 공식 일정을 비워둔 채 아프리카·프랑스 순방을 준비하는 한편으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대응전략을 고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시로 관련 참모들과 전화 통화를 하고 위헌성 여부 등을 검토했다고 전해진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위헌 가능성이 크다고 결론이 날 경우 결국 박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라며 “이제 정부로 법안이 넘어왔으니 정밀하게 검토해 보겠다”고 말했다.
이날 국회법 개정안이 정부로 송부된 만큼, 정부는 앞으로 15일 이내인 내달 7일까지 이 법을 공포하거나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돌려보내야 한다. 때마침 내달 7일엔 박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는 국무회의가 예정돼 있어 법안 확정(공포)이든 거부권이든 이날 회의에서 결론 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국회법 개정안을 놓고 정치권에선 공방이 격화되는 분위기다. 새누리당은 행정부 견제 차원을 넘어 국정 마비를 불러 일으킬 수 있으므로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도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야당에서는 국회의 정부에 대한 감시·감독 권한을 강화해 비대한 행정부를 견제해야 한다는 논리로 맞섰다.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는 “기존 국회법에서도 여야 합의에 의해 국회 차원의 청문회가 가능했다”면서 “이번 개정으로 상임위 차원에서 청문회를 열게 해 국회가 1년 내내 국민의 삶에 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한 것은 일하는 국회를 위한 한 걸음의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가습기 살균제 문제 같은 민생문제를 즉시 다룰 수 있어야 한다”며 “이제 막 국회를 통과한 법에 대해 거부권을 운운하거나 재개정을 거론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도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국회 운영에 관한 법인데 왜 청와대와 국무총리실에서 난리를 치느냐. 청와대가 나서서 국회 운영에 발목을 잡겠단 소리”라면서 “정상적이라면 거부권을 행사할 리 없다”고 주장했다.
반면 김도읍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는 “야당이 일하는 국회라는 미명을 내세우고 있지만 오히려 정쟁하는 국회로 갈 것”이라면서 “이대로 간다면 차라리 거부권을 행사하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새누리당이 국회법 개정안을 소관 상임위인 운영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하지않고 통과시켜 놓고 뒤늦게 문제를 제기했다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국회법 개정안이 운영위에서 가결된 것은 지난해 7월 9일로, 이날은 유승민 전 원내대표가 청와대와 친박계와 대립각을 세우다가 원내대표직을 사퇴한 다음 날이었다. 당시 회의를 진행한 국회운영위원회 위원장도 유 전 원내대표의 사퇴로 공백상태가 되면서 조해진 의원이 위원장 직무대리를 맡았다. 비록 국회운영위내 국회운영제도개선소위원회에서 법안에 대한 논의가 있었지만 당내 분위기가 어수선한 상황에서 법안에 대한 관심
같은달 15일에 열린 법사위에서도 여당 의원들은 한 마디의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다. 19대 국회에서 과반 이상을 차지한 새누리당이 사안의 심각성을 못느끼다가 여소야대 국면이 되자 뒷북을 치고 있다는 지적을 받는 이유다.
[남기현 기자 /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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