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총선에서 이겼다고 해서 보좌진이 웃을 수만 있는 건 아니다. 총선에서 이긴 의원들이 기존 보좌진들한테 ‘일괄 사표’를 내고 다시 들어오라고 하는 경우도 있어서…. ‘충성 서약’인지, 아니면 선수가 올라가면서 기존 보좌진들과는 ‘급’이 안맞는다고 생각하는건지 모르지만 이 과정에서 모멸감, 허탈감을 느끼는 보좌관들이 많다. 총선 승리를 위한 동고동락이 물거품이 되는 기분이니까.(더민주 관계자 A씨)”
#2 “자녀가 귀국하거나 출국할 때 보좌진한테 데리러 갔다 오라고 하는 경우도 있고, 의원 휴가 기간 동안 집에서 개밥을 주라는 의원도 있다. 직원들 돈을 자잘하게 빌려간 다음 갚지 않는 사례도 꽤 있고…. 대학원 과제를 대필시키는 의원도 있다고 들었다. 이럴 때마다 ‘이러려고 국회에 들어왔나’는 자괴감에 시달린다.”(국회의원 보좌관 B씨)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친인척 보좌관 채용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20대 국회가 시작부터 보좌관들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갑질’로 얼룩지고 있다. ‘보좌관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관련 법안들이 20대 국회 시작과 함께 잇달아 발의되고 있지만 19대 국회에서 관련 법안들이 임기만료와 함께 폐기됐다는 점을 감안할 때 법안 통과까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서 의원은 최근 친·인척 보좌관 채용 의혹, 보좌관 월급 상납 의혹 등에 시달리며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다. 더민주는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 지시에 따라 24일 서 의원에 대한 당무감사에 착수했다. 김조원 더민주 당무감사원장은 24일 “오늘(24일) 아침에 지도부로부터 엄정 조사해달라고 연락을 받았다”며 “서 의원실에 25일까지 사실 관계를 포함한 입장을 보내라고 이야기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이날 오전 비대위 비공개 회의에서 서 의원을 당무감사원에 회부하며 “엄정하게 사실을 파악해달라”고 당부했다. 김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당무감사를 통해 상황이 밝혀져야 (후속조치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새누리당에서는 ‘4선 중진’ 이군현 의원이 보좌관 월급을 빼돌렸다는 혐의로 지난 17일 지역 사무실이 압수수색 당하는 수모까지 겪었다. 국회 부의장에 도전했던 이 의원은 ‘갑질 논란’에 발목잡힌 탓에 부의장 도전을 접었다는 후문이다.
◆ ‘친·인척 보좌관’ 오래된 악습
국회의원이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고용하는 관행은 오래전부터 이어져 왔다. 약 25년 전인 1990년에 민자당의원보좌관협의회(민보협) 보좌관들이 “보좌관의 능력보다 사적 친소관계를 앞세우는 풍토는 사라져야 한다”는 구호를 내걸었다는 언론 보도 기록이 남아있을 정도다.
19대 국회에서도 이런 관행은 꾸준히 이어졌다. 문대성 전 새누리당 의원이 매형을 5급 비서관으로 채용했고, 백군기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도 의붓아들을 7급 비서로 채용해 5급까지 승진시켰다 논란이 일자 면직 처리했다. 박윤옥 새누리당 의원은 원래 있던 4급 보좌관 대신 아들이 그 보좌관의 명함까지 사용해가며 일했던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같은 ‘악습’을 막기 위해 관련 법안 제출이 쏟아지고 있다.
김해영 더민주 의원은 지난 23일 ‘보좌진을 인턴으로 채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국회의원수당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지난 20일에는 백혜련 더민주 의원이 ‘친인척을 보좌 직원으로 채용하려면 국회의장과 사무총장에게 신고하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국회법 및 국회의원 수당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문제는 대표 발의자만 바뀐 ‘재탕 발의’라는 점이다. 지난 19대 국회에서는 윤상현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의원이 친인척을 해당 국회의원 보좌진으로 임명할 수 없고, 이를 어기면 퇴직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임기 만료와 함께 폐기됐다.
국회 임기 시작과 함께 의원들이 앞다투어 보좌진 처우 개선을 약속하는 법안을 발의하지만 ‘특권‘과 기득권에 사로잡힌 대다수 의원들이 미온적인 탓에 겉만 번드르르한 ‘헛구호’에 그치는 것이다. 더민주 관계자는 “의원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의원을 ‘동지’로 생각하는 보좌관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라며 “어려웠던 시절을 생각 못하고 ‘일괄 사표’ 받는 등의 구태가 반복되면 보좌관들도 의욕을 잃게 된다”고 지적했다.
◆ 美는 ‘친족 보좌진 채용’ 원천 금지
우리와 달리 선진국에선 친인척의 보좌진 채용을 여러 형태로 제약하고 있다. 미국은 배우자를 포함한 일정 범위 내 친족의 보좌진 채용을 원천 금지하고 있다. 미국 정가에서는 보좌관에 대해 ‘선출되지 않은 의원(Unselected Lawmaker)’이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로 입법 과정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영국은 배우자나 4촌 이내 친족 가운데 한 명만 채용할 수 있다. 프랑스는 채용은 허용하되 원래 수준의 절반에 해당하는 급여만 지급된다. 독일은 친인척 채용에 제한이 없으나 급여를 주는 건 허가되지 않는다. 일본의 경우는 자격시험을 통과 정책보좌관 자격을 보유해야 임용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어떤 형태로든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친인척을 보좌진으로 쓰고 싶으면 무급으로 쓰게 한다든가, 아니면 사촌 이내는 못 쓰게 하고 썼을 경우 의원직을 상실하는 법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관련법
[정석환 기자 / 안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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