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부지가 지난 13일 경북 성주로 결정됐지만 갈등을 봉합해야 할 정치권이 오히려 국론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성주가 사드 배치 부지로 결정되면서 현지 주민들은 거세게 반대를 외치고 있고, 찬반으로 갈라진 정치권은 제 목소리만 높이고 있는 모양새다. 여기에 사드 레이더가 미사일 탐지를 위해 발사하는 고출력 전자파를 놓고 ‘사드 참외’와 같은 과학적 근거가 없는 괴담이 떠돌고 있다.
대부분의 정권은 이번 사드 배치 문제처럼 대형 이슈가 터질 때마다 국론 분열에 따른 갈등을 피하지 못했다.
노무현 정부는 세종시 이전, 방사능폐기물처리장 부지 선정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고 이명박 정부는 2008년 한·미 쇠고기 협상 당시 ‘촛불 시위’로 인해 임기 초반 국정 운영 동력이 마비됐다. 박근혜 정부는 사드 배치 논란 뿐만 아니라 최근 불거졌던 영남권 신공항 논란으로도 TK(대구·경북), PK(부산·경남) 지역의 반발을 피하지 못했다.
문제는 대형 이슈가 터질 때마다 여야 정치권이 당리당략에 따른 입장 번복과 이념 성향에 따른 줄세우기 강요 등으로 갈등을 더 부추겼다는 점이다. 지난 2012년 이명박 정부 당시 제주 해군기지 건설 과정에서 유시민 당시 통합진보당 공동대표는 “지금 진행되는 공사는 중단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유 전 공동대표의 발언은 그가 대통합민주신당 대선 예비후보 시절이던 2007년 8월 한 강연회에서 “평화의 섬과 해군기지가 대양의 평화를 지키는 전진기지가 되는 것 모순이 아니다”는 발언과 어긋나면서 ‘말바꾸기’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사드 이슈에서는 강경한 입장을 주도하는 국민의당의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이 더민주에 명확한 입장 표명을 강요하고 있다. 박 비대위원장은 13일 “더불어민주당 당사 사무실에 김대중·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흉상과 영정을 모시고 있다면 (더민주는) 사드를 반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슈가 터질 때마다 강경파 목소리만 득세하면서 오히려 합리적인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침묵의 나선효과’가 발생하는 것이다.
국민 설득에 소홀한 정부의 미숙한 대처 역시 문제라는 지적이다. 13일 진행된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하태경 새누리당 의원이 황교안 국무총리를 향해 “사드 대국민 홍보단을 만들어야 한다. 노무현 정부가 한·미 FTA 협상 당시 홍보팀을 잘 꾸렸는데 이를 참고해야 한다”고 질타하기도 했다.
여야 주요 대선주자들이 국가 안보와 직결된 사드 배치 문제를 놓고 의견이 좀처럼 모아지지 않는 점 역시 국론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새누리당 대선주자들의 입장은 일찌감치 ‘사드 불가피론’으로 모아졌다. 김무성 전 대표는 “방어적 차원에서 사드 이상의 다른 방법이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남경필 경기도지사 역시 “경기도가 사드에 배치되더라도 받아들이겠다”며 찬성 입장을 밝혔다.
반면 야권 대선주자들은 고민이 더욱 깊어가는 모양새다. 사드 이슈가 대선주자들의 안보관을 가늠하는 리트머스지 역할을 하고 있어서다.
야권 대표주자인 문재인 전 더민주 대표는 사드 배치 결정 재검토와 공론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다만 “사드는 득실이 교차하는 문제”라며 백지화를 요구할 정도의 강경한 입장은 아니라는 점도 피력했다. 사드 배치를 전면 반대하고 나서면 향후 대권행보에서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분석된다.
더민주 소속인 안희정 충남지사도 “대통령은 의회의 비준 동의권을 폭넓게 해석해 의회 지도자들과 충분히 상의해야 한다”며 소통을 강조하는데 방점을 찍었다.
반면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를 강조해온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사드 문제에 대해선 유독 강경한 입장이다. 그는 “사드 배치는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국민투표에 부치자는 주장을 펼쳤다. 리베이트 파문으로 흩어진 지지층을 재결집하기 위한 의도라는 분석이다.
이같은 갈등이 거듭되는 것을 막기 위해 ‘갈등조정 상시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다시 힘을 얻고 있다. 2015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표한 ‘사회갈등지수 국제 비교 및 경제성장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회갈등지수는 1.043(2011년 기준)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24개국 중 5위로 조사됐다. 반면 사회갈등관리지수는 조사대상 34개국 중 27위로
정권의 영향력으로 자유로운 민관 합도 ‘갈등조정 상시기구’를 만들어 대다수 국민들이 공감하는 통합적 가치를 도출하고 정당이 ‘정책 경쟁’을 펼쳐야 반복되는 국론 분열을 피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오수현 기자 / 정석환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