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점을 알면서도 일단 시행해보자는 것은 잘못이다. 남은 두 달 동안 두드러진 문제점만이라도 고치고 시행하는 것이 좋겠다.”(허영 경희대 석좌교수)
“많은 국민을 범죄자로 만들 우려가 있는 법이다. 소통 자체를 단절시킬 위험이 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헌법재판소가 28일 오후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헌법에 어긋나는지 최종 판단을 내릴 예정인 가운데 매일경제신문이 법조계·학계·경제계 원로들로부터 의견을 들어본 결과 다수가 염려를 표시했다. 김영란법의 대승적 취지에는 모두 공감하면서도 “실제 법 적용 과정에서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김영란법은 ‘과잉입법’이란 의견이 많았다.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박재완 성균관대학교 국정관리대학원장은 “전형적인 과잉규제라고 생각한다”며 “인간관계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이 모두를 처벌대상으로 하는 것은 지나치다. 부패의 단초가 될 수 있는 행위를 뿌리부터 차단하자는 취지를 이해하지만, 그런 규제 자체가 불러올 부작용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도 “실제와 다르게 명분만 생각하고 만든 법이 아닌가 싶다”며 “모든 법은 집행 가능성, 즉 현실과 맞아야 하는 것이지 이론대로 그냥 시행한다고 하면 부작용만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직무관련성 등 법에 모호한 부분이 있어서 앞으로 분규와 분쟁이 끊임없이 이어질 것 같다”며 “분쟁을 우려해 아예 만나지 않다 보면 소통이 단절되고 결국 사회 전체에 활력이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박재완 원장도 “공직자들이 민간인과 서로 교류하고 접촉하면서 애로사항을 청취하고 건의를 전달받을 수 있는 그런 경로 자체가 아예 차단될 수 있다”며 “공직자들이 더 무사안일 주의로 나갈 수 있고 그렇게 되면 이른바 협치, 거버넌스, 양방향 행정 등에 걸림돌이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배우자의 금품 수수 사실을 알게되면 반드시 신고하고 어기면 처벌받는 ‘불고지죄’ 조항에 대해서도 문제 제기가 나왔다.
이필상 전 고려대 총장은 “실효성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가족이란 기본 가치를 오히려 훼손하는 위험한 일 같다”고 지적했다.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사 임직원까지 적용 범위를 확대한 부분에 대해서도 여러 원로가 우려를 표했다.
권태신 원장은 “공무원만 규제를 하면 되는데 가이드라인도 아닌 법으로 민간영역까지 함께 규제하면 생각지도 못한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오는 9월 28일 시행 전에 문제점들을 지금이라도 보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허영 석좌교수는 “부패를 막자는 입법취지야 모든 국민이 동의하겠지만 그 목적을 달성하는데 있어서 국민에게 가장 적은 피해를 주면서도 부패를 방지할 수 있는 좀 더 좋은 수단은 없었는지 문제 제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아직 시행까지 두달이나 남았는데 국회가 뜻이 있으면 여론을 수렴해서 고칠 수 있는 시간이 충분히 있는 만큼 가장 두드러진 문제점만이라도 고치고 시행하는게 좋지 않겠냐”고 강조했다.
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고문변호사도 “‘틀렸다, 맞다’ 논쟁보다는 더 토론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특히 상한액 ‘3·5·10만원’처럼 숫자와 관련된 것은 액수를 실효성 있게, 사회적 공감대를 높이는 쪽으로 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 일각에서는 금액이 너무 낮아 지키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의견이 있으니 처음 시행할 때에는 공감대를 확보할 수 있게 상한액을 높였다가 공감대가 확산되면 단계적으로 조금씩 낮추는 방향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에 비해 김영란법에 많은 문제가 있지만 부정부패 추방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원안대로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낸 신영무 바른사회운동연합 상임대표는 “김영란법에는 여러가지 문제가 있으나 그 문제에 지나치게 천착해서는 안 된다”며 “부정부패를 추방하지 않으면 이 나라에 희망이 없고, 김영란법을 통해 부정부패 일소를 위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