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 여당의 새 지도부를 선출하는 8·9 전당대회가 결국 계파갈등으로 귀결되고 있다. 지난 3일 김무성 전 대표가 나서 ‘비박 단일화’를 사실상 종용하자 친박계가 일제히 십자포화를 퍼부으면서 갈등이 노골화되는 모습이다.
이주영 후보는 4일 “이번 전당대회까지 계파 대결 구도를 만들어 낸다면 당의 미래는 참 암울하다”면서 “당 대표까지 지낸 분이 뒤에서 단일화를 말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김 전 대표를 비판했다. 이장우 최고위원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총선 패배의 최대 책임자이고 역대 최악의 당 대표였던 분으로서 자중해야 한다”고 맹공을 퍼부었다.
이에 대해 김 전 대표의 간접 지지를 받고 있는 정병국 후보는 이날 오후 열린 TV토론에서 “친박 패권주의를 이번 전당대회에서 청산하라는 것이 국민들의 명령”이라며 “혁신 세력끼리 연합하는 것을 또 다른 계파라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청와대 TK 회동을 놓고도 신경전이 이어졌다.
한 비박계 의원은 “대통령이 굳이 대구·경북(TK) 의원들을 청와대로 모은 이유를 모르겠다”며 “유승민 의원 등 비박계는 제외하고 친박계 의원들만 부르지 않았냐”고 청와대로 화살을 돌렸다. 청와대 회동은 TK 표심을 규합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게 비박계 주장이다.
이날 오후 북유럽 출장에서 돌아온 최경환 의원도 공항에서 기자와 만나 “당의 화합과 미래 비전을 위하는 전당대회가 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며 “대통령이 여당 의원들을 만나 현안 문제를 고민하는 것은 시기와 상관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경선 과정에서 계파간 줄세우기가 재현되면서 전당대회 이후에도 양측의 갈등은 쉽게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단 최고위원 라인업은 친박계가 다수를 점유할 가능성이 높은 상황이다. 비박계가 당 대표가 되더라도 선장 역할을 하기가 만만치 않아 보인다. 반대로 친박계가 지도부를 싹쓸이하면 비박계가 외곽에서 똘똘 뭉칠 가능성이 크다.
당내에선 김무성 전 대표가 경선개입 논란이 일어날 것을 잘 알면서도 정병국·주호영 후보간 단일화의 촉매를 제공하고, 비박계 표심을 규합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발언을 강행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실제로 이날 오전 김 전 대표의 측근인 김학용 의원 등은 여의도 한 호텔에서 주호영 후보와 직접 만나 단일화를 강하게 압박했다. 한 참석자에 따르면 주 후보는 회동 막판에 “내가 대의에 어긋나는 일을 하겠냐”며 단일화 가능성을 열어뒀다고 한다.
주 후보가 언급한 ‘대의(大義)’란 친박계 당선을 저지하는 것이 아니냐는게 비박계 참석자들의 해석이다. 참석자들은 주 후보에게 “TK 당원 수를 감안하면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주 후보가 이길 수도 있다”며 “비박계 단일화가 안되면 친박계 당선이 불보듯 뻔하다”고 호소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주 후보는 주변에 완주 의지를 강조한 것으로 알려져 최종 결론이 주목된다. 7일에 전국적으로 당원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때문에 단일화를 위해선 5일이 물리적 마지노선이다.
반대로 친박계는 표가 이주영·이정현 후보로 갈려 비박계가 어부지리 효과를 거둘 것을 경계하고 있지만 뾰족한 대응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두 사람간 단일화 가능성은 없는데다 서청원·최경환 등 친박계 리더들도 직접적 개입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신헌철 기자 / 최현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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