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내 노선 투쟁을 촉발시켜온 더불어민주당 강령 문제에 대해 ‘불필요하고 소모적인 논쟁’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노동자’, ‘서해평화협력지대’ 등의 표현을 강령에서 넣고 빼는 것이 당의 진로나 민생과는 큰 상관이 없는 ‘지엽적인 문제’인데 당권주자들이 소모적인 논쟁에 빠져 당력을 소진시키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셈이다. 앞서 더민주 전당대회준비위 강령·정책분과는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 향상을 위한 노력을 존중한다’는 문구에서 ‘노동자’를 빼겠다는 방침을 발표했다. 이에 김상곤·이종걸·추미애 후보 등 당권주자들은 일제히 “강령에서 ‘노동자’라는 단어를 빼서는 안된다”며 전당대회준비위측을 비판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안희정 충남도지사는 16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단어 한두개를 가지고서 갑자기 정체성이 왔다 갔다 하진 않을 것”이라면서 당 지도부를 공격하고 있는 당권 주자들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안 지사는 “일반 시민들의 눈에 봤을 때 없는 사람, 힘없는 사람, 사회적인 약자가 골고루 정의롭게 잘 살자는 정신이 우리 당의 정신이었기 때문에 단어 몇 개를 가지고 정체성이 갑자기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강령의 문구를 수정하거나 조정하려고 하는 당 지도부가 어떤 문제의식이 있다면 그걸 좀 당원들한테 자세히 설명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서 안 지사는 “전당대회기간 중이라 구체적으로 어떤 문제의식 때문에 그 문구를 넣고 빼고자 했는지 제안한 분의 제안 이유를 좀 더 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 지사의 이 같은 입장은 “당 대표에 출마한 사람들이 얼마나 말이 궁색한지를 알겠다”며 당권 주자들을 비판한 김종인 비대위 대표의 입장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강령 개정 문제의 키를 쥐고 있는 일부 비대위원들도 이 같은 취지에 공감을 표시했다. 정성호 비대위원은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강령에 노동자를 넣어도 되고 빼도 된다”면서도 “이 문제를 가지고 ‘노선투쟁’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싸울 문제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 비대위원은 “기본적으로 김종인 비대위 대표와 같은 입장”이라면서 “이 같은 논쟁을 벌이는 것은 노동자, 농민, 학생을 도식적으로 구분하던 80년대 학생운동식 낡은 사고방식”이라고 정면 비판했다.
하지만 17일로 예정된 비대위에서는 ‘노동자’, ‘서해평화협력지대’ 등의 용어가 강령에 다시 포함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매일경제가 비상대책위원 5명 중 4명의 의견을 들은 결과 ‘삭제 반대’가 3명(이개호·양승조·김현미 비대위원)이었고, ‘어떻게 결정돼도 상관 없다’는 의견이 1명(정성호 비대위원)이었다. 당연직 비대위원인 우상호 원내대표는 이미 ‘삭제 반대’
양승조 비대위원은 매일경제와의 통화에서 “노동자와 서해평화협력지대 용어는 강령에 포함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고, 이개호·김현미 비대위원도 “당이 오랜 시간 지켜온 정체성이 있기 때문에 노동자·서해평화협력지대 용어가 포함돼야 한다”고 밝혔다.
[박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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