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해운업 구조조정 대책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긴급 편성된 추가경정예산안(추경)이 여야의 극심한 정쟁으로 발목잡혀 있는 가운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소속 의원들이 추경 취지와 동떨어진 지역구 민원성 예산을 대폭 요청한 것으로 드러나 빈축을 사고 있다.
지난달 31일 매일경제가 입수한 추경 조정소위 심사자료에 따르면 예결위 소속 여야 의원들은 총 34개 사업에서 5202억6500만원 규모의 예산 증액을 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확인됐다. 아직 이들의 요구가 추경안에 반영되지는 않았지만 추경 규모가 11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추경예산 중 5%가 지역구 예산으로 둔갑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중 게임산업 육성산업 지원 등 정확한 증액 금액을 거론하지 않은 사업과 확인되지 않은 증액 요청까지 합하면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본지가 확인한 34개 사업 중 9개 사업은 정부가 올해 본예산과 추경에 편성하지도 않았는데 의원들이 지역구 사업이라는 이유로 끼워넣은 신규 사업인 것으로 나타났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서울 중랑을)은 서울지하철 1~4호선 노후시설 개선 사업과 지하철 무임수송 손실비용 지원, 지하철 승강장 안전문 개선, 봉화산 위험절개지 정비사업 등 5가지 사업을 추경에 신규로 추가할 것을 요구했다. 박 의원은 “서울시의 요청으로 서면질의를 통해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해명했으나, 예산 증액을 요청했는지도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내년 대선 출마를 선언한 김부겸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장애인의 시외이동권 보장을 위해 고속형 시외버스에 전동형 휠체어석 설치를 위한 버스개조비로 48억원을 신규 요청했다. 국가재정법에 따라 전쟁이나 대규모 재해, 경기침체, 대량실업 등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을 때 편성하도록 한 추경 요건을 무색하게 하는 셈이다.
또 이번 추경은 ‘쪽지예산’이 넘쳐나는 본예산 심사 구태를 그대로 재연했다. 심지어 내년도 예산 확보를 위한 ‘알박기’ 성격의 요청도 많았다. 가장 많은 지역구 예산을 요청한 의원은 김한표 새누리당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문화체육관광부 소관의 조선업 밀집지역 관광산업 육성이라는 세부사업에서만 8건의 증액을 요청했다. 구체적인 내역은 한려해상국립공원 바람의 언덕 주차장 조성, 지심도 생태관광명소 조성, 계룡산 모노레일 설치, 청마테마파크 조성, 거제관광홍보관 건립, 고현·옥포 중심 상업거리 조성, 옥포 성안로 특화거리 조성 등으로 총 290억5000만원에 이른다. 김 의원은 지역구내 장승포항 야관경관조명 설치를 위해 10억원을 추가하는 등 총 304억4000만원을 요청했다. 그나마 김 의원은 조선·해운업 구조조정의 직격탄을 맞은 경남 거제를 지역구로 둬 증액 요청 명분이 있다는 변명도 가능하다.
이어 박홍근 의원과 박순자 의원이 각각 228억4000만원과 192억원을 증액 요청하며 김 의원의 뒤를 이었다.
박홍근 의원도 지역구내 중랑천 둔치 제2 장미정원 조성, 중화리 어린이 공원 안전 정비, 장미 역사관 조성 및 수림 대공원 야외공연장 정비 등 9건을 주문했다.
한 예결위 의원은 “당장 추경에 편성되지 않더라도 내년도 예산에 포함시킬 수 있도록 정부를 압박하는 근거로 남기기 위해 증액 요청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고 토로했다.
일부 야당 의원들은 정부와 여당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추경에서 일절 배제하겠다고 한 원칙을 무색하게 하기도 했다.
이용주 국민의당 의원(전남 여수시갑)은 2020년 개통을 목표로 전남 보성에서 목포 임성리를 잇는 보성-임성리 철도 건설의 조기 준공을 위해 2000억원을 요청했다. 김종회 국민의당 의원(전북 김제부안)과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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