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대통령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국회에 도착, 정세균 국회의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 <김재훈기자> |
가장 궁금한 것은 ‘시기’ 문제다. “왜 하필 이때”라는 질문이 여기저기서 쏟아진다.
사실 박 대통령과 청와대 참모들은 언젠가는 개헌이 공론화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박 대통령 스스로가 개헌론자였다. 임기내 개헌 필요성에 대해 누구보다 생각이 많았던 사람이 박 대통령 자신이다.
하지만 그간 박 대통령은 개헌을 일체 거론하지 않았다. 올해 1월 신년 기자회견때 “지금은 개헌 얘기를 할 정도로 여유있는 상황이 아니다. 경제활성화·안보문제·청년고용 절벽 등 하루가 급한 문제들이 뭔가 풀리면서 그런 얘기를 해야 국민 앞에 염치가 있는 것”이라고 밝힌 이후 이달 중순까지 거의 10개월간을 참고 또 참았다. 일단 올해는 공공·노동 등 4대개혁 완수에 집중해야 할 때임을 강조하면서 ‘민생 올인’ 기조를 이어왔다.
자연스레 개헌 논의는 뒤로 밀렸고 공론화 시기는 빨라야 연말이나 연초께로 관측됐다.
그러다 이날 박 대통령 입에서 갑작스레 ‘개헌’ 얘기가 나왔다. 모두가 당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일각에서 “최순실·우병우 논란을 덮기 위한 ‘국면전환용’ 아니냐”며 즉각 의구심을 표하고 나선 것도 일면 당연한 일이다.
박 대통령 본인도 꽤 많은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일종의 모험이다. ‘개헌’은 최순실·우병우 논란 뿐만 아니라 모든 정책 이슈를 집어삼킬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정부가 그토록 바라던 4대개혁 과제가 이 이슈에 영영 묻혀 버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승부수를 던졌다. 왜 하필 이때, 박 대통령이 개헌론을 들고 나온 이유는 뭘까.
박 대통령은 의회 권력이 막강해진 정치환경에서 정책 동력을 확보하기가 쉽지 않음을 요즘 들어 더욱 절실히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일부 참모들에게 가끔씩 “정말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다”고 하소연하기도 했다. 지금 정치권은 하루가 멀다하고 ‘최순실·우병우 논란’으로 싸움박질이다. 여기에 ‘송민순 회고록’도 가세했다. 이러다가 남은 1년3개월여 임기를 허송세월할 수 있겠다는 위기감이 청와대를 짓눌렀다.
이같은 기류 속에서 결국 박 대통령은 ‘포기하지 않기로’ 결심했을 가능성이 크다. ‘여소야대’ 국면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정국을 주도해 나가기 위한 ‘결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한 참모는 “최순실·우병우 논란에 앞으로 한발짝도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레임덕 우려가 제기되는게 현실”이라며 “박 대통령이 임기말까지 중심에 서서 남은 정책 과제를 완수하고 국민의 미래를 위한 토대를 쌓겠다는 뜻에서 개헌 제안을 한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말했다.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도 “박 대통령이 필요시 개헌안을 발의할 수 있다”며 “앞으로 박 대통령이 개헌 논의를 주도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시정연설에서 이런 고민의 일단을 털어놨다. 여기엔 정치권을 향한 원망의 메시지 또한 담겨 있다.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은 선진국의 문 앞에 서 있지만, 그 문턱을 넘지 못하고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는 절박한 상황이다. 나는 대통령에 취임한 후 경제혁신 3개년 계획, 4대 구조개혁으로 당면 문제를 해결하고 그 마지막 문턱을 넘기 위해 매진해 왔다”며 “그러나 지금 돌이켜 보면 우리가 당면한 문제들을 일부 정책의 변화 또는 몇 개의 개혁만으로는 근본적으로 타파하기 어렵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토로했다. 박 대통령은 이어 “극단적인 정쟁과 대결구도가 일상이 됐고 민생보다는 정권창출을 목적으로 투쟁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대한민국 발전을 가로막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국가적 정책현안을 함께 토론하고 책임지는 정치는 실종됐다”고 꼬집었다.
이같은 문제가 극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최근 개헌에 대한 국민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점(국민 70% 이상 찬성), 20대 국회 들어 특정 정치 세력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끌고 갈 수 없는 여야 3당 구도가 형성된 점을 고려해 지금이 개헌을 논할 적기라고 판단했다고 박 대통령은 설명했다.
하지만 이같은 설명에도 여전히 ‘국면전환용’ 아니냐는 의구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김재원 청와대 정무수석은 이에 대해 “그런 주장은 기우에 불과하다. 개헌을 제안한다고 해서 (최순실·우병우
[남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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