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향수(鄕愁)와 칭송이 고스란히 담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회고록이 공개됐다.
16일 한국일보에 따르면 김기춘(78)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일부 친지와 지인에게 줄 목적으로 2009년에 '오늘도 내 인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이라는 제목의 회고록을 제작했다.
김 전 비서실장은 박정희 유신 정권 때 '잘 나가는 검사'로 성장했고 전두환·노태우 정권때 검사장과 검찰총장, 법무장관을 지내며 '권력의 정점'에 올라선 인물이다. 회고록에는 노골적인 반공의식이 여과 없이 표출돼 있어 그의 국가관과 역사의식이 1970~80년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우선 김 전 비서실장은 회고록에서 1961년 5월 16일 박 전 대통령이 일으킨 쿠데타를 시종일관 '5·16 군사혁명' 혹은 '5·16 혁명'이라고 쓰고 있다. 문민정부가 들어선 1993년부터 해당 사건의 공식 명칭은 '5·16 군사정변'으로 수정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 용어를 고집하는 것이다.
김 전 비서실장은 또 박 전 대통령을 두고 "역사의 앞날을 내다보는 예지와 소신, 그 소신을 관철시킬 수 있는 추진력을 겸비한 분"이라며 "우리 역사상 그분만큼, 오로지 민족중흥에 대한 일념만으로 사심 없이 애국 애족하며 자기를 희생한 지도자는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그는 유신 정권 시절 자행된 인권 탄압과 민주주의 억압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은 채 "그분의 내면에는 소탈함하고 따뜻한 인간애가 충만하고 있었다"며 "세종대왕과 함께 그분을 존경한다"고 고백했다.
1972년 박 전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위해 단행한 '10월 유신'에 대해서 그는 "국론을 통일하여 국력을 결집하고 정부 운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며 "그 우국충정에도 불구하고 국내외적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고 아쉬움을 토로했다. 1972년 당시 법무부 검사였던 김 전 비서실장은 유신헌법의 기초를 마련해서 박 전 대통령에게 직접 보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전 비서실장은 1974년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장으로 임명되기 한 달 전 발생한 고(故) 육영수 여사 시해 사건 범인 문세광으로부터 자백을 받아냈다. 이를 계기로 박 전 대통령이 "김기춘 검사가 수사 실력이 탁월하니 대공수사국장으로 임명하라"고 지시했고 "중정 역사상 최연소(만 34세 10개월) 수사국장으로 중책을 맡았다"고 자랑스럽게 회고했다. 또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많은 총애와 가르침, 격려를 받았다"며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아울러 김 전 비서실장은 회고록에 역대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기술해놓았다. 이승만 전 대통령에 대해 "영웅적인 생애를 산 사람으로서 국부(國父)로 받들어 존경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며 "집권 말기에 (1960년 3·15) 부정선거 등 오명을 남겼지만 나라를 건국하고 공산당이 일으킨 6·25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나라를 지켜내었고,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세계 외교사에서 찾아보기 힘든 역사적 거사를 이뤘다"고 평가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자신이 관련된 일화를 공개하면서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1981년 검찰국장에 오르기 전 박정희 정권에서의 경력이 논란을 빚자 전 전 대통령이 "그것은 다 지나간 일이니 개의치 말고 앞으로 더욱 열심히 하라고 하시오"라고 했다며 "쾌히 재가해 주셨다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다.
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해선 "검찰총장 임기 내내 검찰의 독자성을 지켜 주려고 배려해 주셨고, 총장 임기를 마친 후 6개월 정도 지나 개각 시에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해 주셨다"고 회고했다.
특히나 그는 군사정권 시절을 회고하며 "(검찰)총장 재임 시절 나는 '공산주의자들은 무좀과 비슷하다. 약을 바르면 잠시 들어갔다가, 약을 바르지 않으면 또 재발하는 것이다. 뿌리를 뽑지 않으면, 또 언제 독버섯처럼 돋아날는지 모른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며 "그만큼 끊임없는 사상 투쟁, 국민의 사상 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김 전 비서실장은 그러
[디지털뉴스국 배동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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