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업을 기리겠다며 국민 대통합 행보에 박차를 가했다. 다만 반 전 총장의 핵심 지지층이 중도보수 진영이라는 점에서, 친문(친문재인)의 뿌리인 친노(친노무현) 세력과의 해빙무드가 또다른 이념논란을 불러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17일 반 전 총장은 유순택 여사와 함께 경상남도 김해 봉해마을을 찾아 권양수 여사를 예방한 후 기자들과 만나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과 리더십은 아직도 국민 가슴 깊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또 "노무현 대통령께서 취임식때 변혁과 통합을 외치시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면서 "정치교체를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던 것도 아직 우리 가슴 깊이 남아있다"며 노 전 대통령의 정신에 공감대를 표했다.
노 전 대통령의 묘역에 참배한 후 남긴 방명록에서도 "따뜻한 가슴과 열정으로 '사람 사는 사회'를 구현하기 위해 헌신하신 노무현 대통령님께 무한한 경의를 표한다"면서 "대한민국의 발전을 위해 미력하나마 진력하겠다"고 적었다.
반 전 총장은 권 여사와의 35분간 비공개 대화에서 노 전 대통령을 더욱 추켜세웠다. 반 전 총장은 "이제 귀국했으니 앞으로 권 여사님을 가까이 모시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업도 기리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노 대통령께서 저를 유엔 사무총장으로 진출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주셨다"면서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직접 말씀도 해주시고.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이렇게 돌아와 인사를 드리니 감회가 더욱 깊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권 여사도 "유엔으로 떠나신게 엊그제 같은데, 성공적으로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신 것을 축하한다"고 화답하고 "혹시 밖이 시끄럽지 않았느냐"며 반 전 총장을 걱정하기도 했다. 반 전 총장은 "민주 사회에서 이런 정도야 늘 있을 수 있지 않느냐"며 답했고 권 여사도 "저희 때는 더 했지요"라며 위로했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을 맞이하는 노 전 대통령의 지지층 반응은 냉담했다.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등 친노 단체들은 일찌감치 봉하마을에 모여 반 전 총장을 비판하는 현수막을 걸고 피켓을 머리 높이 들며 도열했다. '배은망덕 기름장어', '굴욕적 한일 합의 환영한 반기문' 등 반 전 총장을 비판하는 거친 언사들이 넘쳐났다. 반 전 총장이 묘역에 도착하자 친노 지지자들은 몸싸움을 벌이며 시위대와 경찰, 취재진이 한데 뒤엉키기도 했다.
반 전 총장 측은 노 전 대통령 서거 당시 조문을 하지 않았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 "2009년 5월 24일 반 총장이 스리랑카 공식 방문 중 갑작스런 노 전 대통령의 서거에 현지에서 애도성명을 발표하고 뉴욕 유엔대표부에 마련된 노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참배했다"면서 "2011년 12월 1일에는 반 총장이 방한 중 봉하마을을 참배했고 재단 이사장인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참석했다"고 적극 해명했다.
한편 반 전 총장이 지난 16일 "설 이후 입당 여부 가닥이 잡힐 것"이라고 밝히면서, 그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커지고 있다. 당초 반 전 총장 측은 '정치교체'를 주장하면서 최대한 기성정치권 밖에서 '나홀로' 행보를 이어간다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당 조직 없이 전쟁터 같은 조기대선판에서 반 전 총장 측은 돈과 조직의 열세를 점점 실감하고 있다.
설 이후 반 정 총장이 고를 수 있는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다. 독자행보를 이어가거나, 바른정당에 입당하거나, 신당을 차리는 것이다. 현재로선 설 이후 반 전 총장의 바른정당 전격입당 시나리오가 가장 유력하다. 대권을 노리는 유승민계 일부 의원들은 반 총장의 입당에 부정적 입장을 보이기도 하지만, 바른정당 대다수는 중도보수정권 창출을 위해 반 전 총장의 조속한 합류를 원하고 있다. 반 전 총장이 바른정당 입당을 결단할 경우, 충청권과 중도성향의 새누리당 의원들이 추가 탈당해 합류할 가능성이 높다. 충청권 의원들을 중심으로 신당을 창당하는 안도 고려할 수 있지만 불확실한 대선시기를 감안할 때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반 전 총장이 대선레이스를 완주할 경우, 종국에는 안철수 전 대표를 포함한 중도 보수 세력과의 ‘빅텐트 세우기'로 판이 짜질 전망이다. 바른정당 유승민 의원과 남경필 경기도지사는 물론, 김종인 의원과 김부겸 의원,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같은 진보진영까지 빅텐트 안에 모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박지원 국민의당 신임대표도 이날 한 라디오 인터뷰에서 반 전 총장 관계인사의 말을 빌어, "반 전 총장 측이 2년반전부터 저희를 접촉한 것은 사실이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으로는 가지 않고 국민의당에서 경선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측은 이날 한 방송사의 '김어준의 뉴스공장'을 통해 제기된 둘째 동생 반기호씨 관련 의혹에 대해서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전범주 기자 / 김해·진도 = 안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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