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에서 북한관련 이슈를 통칭하는 '북풍(北風)'은 꽤 오랜 시간 보수진영에게 '전가의 보도'나 다름 없었다.
한국의 보수·진보 이념 대결에 있어 가장 극명하게 갈리는 길목이 대북관이었고, 북풍은 보수 결집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최근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에 이어 김정남 암살 의혹까지 받으면서 보수진영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조기 낙마를 두고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역대 대선에서 가장 메가톤급 북풍 사례를 꼽으라면 KAL기 폭파 사건을 들 수 있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 후보가 치열한 3파전을 벌였던 1987년 대선 당시 북한 공작원 김승일·김현희가 대한항공 858편을 폭파하면서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등 야권 후보가 표를 나눠가진 정치공학적 이유 외에도 북한의 초대형 테러로 인한 안보 이슈가 군 출신인 노태우 후보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결국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민주화 인사들을 제치고 직선제 대통령으로 뽑히는데 큰 역할을 했다.
1992년 대선 당시엔 당시 '최대 간첩단'으로 불렸던 중부 지역당 사건에 김대중 평민당 후보의 비서가 관여됐다는 소문이 돌면서 색깔론에 불이 붙었다. 치열한 이념대결과 지역대결을 거치면서, 3당 합당 이후 보수여권의 김영삼 민자당 후보가 당선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가깝게는 2012년 18대 대선때 고 노무현 대통령의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이 이슈화되면서 당시 박근혜 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으로 흘러갔다.
새누리당 대선 총괄선대본부장이었던 김무성 전 대표가 노 전 대통령이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북방한계선(NLL) 포기' 발언을 한 비공개 대화록이 있다고 폭로한 것. 박근혜 후보는 노 대통령의 뒤를 이은 문재인 후보의 대북관을 공격하는 소재로 이를 적극 활용했다.
1996년 15대 총선 직전에는 북한이 비무장지대에서 사흘 연속 무장시위를 벌여 수도권에서 당시 야당인 국민회의의 우세가 순식간에 뒤집히기도 했다. 2012년 연달아 실시됐던 19대 총선과 18대 대선을 앞두고도 북한은 장거리 로켓 '광명성 3호'와 '은하 3호'를 연달아 발사해 안보 위기를 고조시켰다.
하지만 이런 북풍이 보수층에 유리하게 작용된 것만은 아니다.
1997년 15대 대선은 소위 '총풍(銃風)' 사건으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가 큰 곤혹을 치렀다. 그해 12월 이 후보 측에서 지지율 결집을 위해 아태평화위원회 참사를 만나 북한 휴전선 인근에서 무력시위를 요청한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이 후보는 역풍을 맞아 김대중 후보에게 졌다.
2007년 17대 대선 직전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최근에는 선거에서 북풍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색깔론에 대한 유권자들의 피로감이 높아진데다 국내 이슈에 대한 관심도가 커졌기 때문이다.
[전범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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