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 결정으로 국민이 직접 뽑은 권력은 국회 만이 유일하게 됐다. 단 하나 남은 '선출된 권력' 국회 앞에 놓인 숙제는 많다. 대통령 궐위 상태에서 국민의 상처를 치유해야 하며 국론 분열을 극복하고 화해로 나아가게 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국회가 보여줬던 모습들은 화합과 치유보다는 분열과 정쟁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에서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전문가들은 “국회가 국정의 중심을 잡고 막중한 역할을 빈틈없이 수행하면서 화합의 길로 나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 국회, 대통령 없는 국민 치유 나서야
당장 필요한 것은 국회의 수장 정세균 국회의장과 5개 정당이 나란히 대국민 치유·화해 공동선언을 통해 국민 혼란을 줄여야한다는 점이다. 국가 수장 대통령이 사라진 초유의 사태 앞에서 국민의 불안과 충격을 국회가 앞장서서 해소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양승함 연세대 명예교수는 12일 매일경제와 통화에서 "현재는 여야가 없어진 상태이므로 국회의장과 5개 정당 대표가 더불어서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는 정치지도자의 역할을 보여야 한다"며 "그 역할은 바로 대통령을 잃어버린 상황에 대한 정신적인 상처를 받은 국민을 치유하고 화합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파면을 야당의 승리로만 여길 것이 아니라 정치권이 모두 무거운 책임을 져야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는 정 의장이 지난 10일 "우리 정치가 탄핵되었다는 심정으로 정치개혁에 매진해나가야 한다"고 말한 것과 맥을 같이 한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대통령이 탄핵 된 것이 무슨 축제인가"라며 "국가적으로 슬픈 일인데 반대편이 제거 됐다고 (야권이)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보이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이에따라 당장 정 의장 주도로 13일 이뤄질 4당 원내대표 회동에서 '포스트 탄핵' 정국해법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 세비받는 의원, 대선후보 비서실장 맡지 말아야
국회의 책임있는 활동은 국회 본연을 역할을 충실히 하는 것부터 시작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3월 임시국회에서 민생·개혁법안을 먼저 처리해 국회의 입법기능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2월 임시국회를 넘어서지 못한 노동개혁법안 등이 이에 해당한다. 5월 초 조기대선이 예상되는만큼 3월 임시국회에서 제때 민생입법이 통과되지 않으면 다음 정부 수립 이후에나 기약할 수 있어서다.
가상준 단국대 교수는 "국회가 그동안 민생법이나 중요한 법안을 챙기지 못한 것이 많은데 이를 우선 처리해야할 것"이라며 "다만 2007년이나 2012년 대선때도 민생입법을 제대로 하지 않고 국정감사, 정기국회, 예산안 모두 대강 마무리 했으므로 이번에도 답습할까봐 우려된다"고 말했다.
각 정당 국회의원들이 특정 대선후보 캠프에서 역할을 맡는 것을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국회의원들이 대선운동에 나서면 입법·감시 기능을 소홀히 할 것이며 삼권분립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이정희 한국외대 교수는 "의원들이 대선후보의 참모나 대변인, 비서실장으로 활동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이는 삼권분립의 정신에 어긋난다"며 "세비받는 의원들이 의정활동을 하지 않고 대선후보의 비서나 선거운동원 노롯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행정부의 수반을 뽑는 대선에서 입법부에 속한 국회의원들이 본연의 일도 내던진 채 발벗고 나서는 것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어 "지금까지 대통령에게 국회가 종속돼 왔던 것은 의원들이 대선운동 때 대선후보를 도와주면서 생긴 일"이라며 우려를 나타냈다.
바른정당 한 중진 의원도 "대선은 대선후보들이 뛰고 국회는 국회의원들이 민생과 경제 살리기에 앞장서야할 것"이라고 밝혔다.
◆ 정부·5개 정당 협의체 구성해 '협치'
국정 공백상태를 메우기 위한 정부·5개 정당 범국민 당정협의체가 구성돼야한다는 의견도 많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와의 협치를 통해서 정부가 정책 집행의 역할을 원활하게 하도록 해야한다는 것이다. 현재 국방·외교·경제 문제가 산재한 상황에서 국회가 황 권한대행 정부 정책에 '무조건 반대' 입장만 낸다면 국가적 위기까지 몰고 올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양승함 교수는 "황교안 권한대행이 박근혜 정부의 총리라는 이유로 반대만 해서는 안되며 정부가 국내외 위기를 극복하도록 국회가 합리적으로 판단해 이끌어야 한다"며 "원내 제1당은 물론 5개 정당이 함께하는 범정치권, 범국민적인 협치 당정협의체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양 교수는 또 "조기대선 직후에 새 대통령이 곧바로 직무를 볼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인수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우려 목소리도 있다. 황 권한대행이 야4당과의 정책협의를 하지 않거나, 야4당이 정부 정책에 무조건 반대를 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신율 교수는 "국회에서 (정부 정책을) 크게 문제를 삼지 않는다면 황 권한대행과 크게 틀어질 일이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양승
[김효성 기자 / 추동훈 기자 / 김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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