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미국 대선에선 총 24억달러(2조7000억원)에 달하는 돈이 선거 캠페인에 투입했다. 경선에 나왔던 17명의 후보가운데 승자는 트럼프 대통령이었지만 막상 돈은 힐러리가 7억6800만달러로 더 많이 썼고, 트럼프는 절반 수준인 3억9800만달러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부동산 갑부로 알려진 트럼프가 상대 후보 비용의 절반만 쓰고도 선거에 이길 정도로 탁월한 가성비를 기록한 것은 소셜미디어를 직접 활용하는 대신 자신에게 적대적이었던 주류 미디어에는 광고비 지출을 아낀 덕분이었다.
미국에 비할 규모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대선 등 큰 선거가 치뤄질때면 어김 없이 '쩐의 전쟁'이 벌어진다.
올해 우리나라 대선에서 후보 1명이 쓸 수 있는 제한액은 무려 509억9400만원에 달한다. 적지 않은 돈이다. 하지만 2012년 대선때는 559억7700만원으로 더 많았다. 제한액이 들쭉날쭉한 것은 2004년부터 총 인구수에 950원을 곱한 금액에 물가상승률을 감안해 최종 산정액이 나오기 때문이다. 지난 대선때보다 물가 오름폭이 적다보니 오히려 쓸 수 있는 돈의 규모는 줄었다. 천문학적인 선거비용을 쓰는 미국의 경우 선거비용을 국가에서 보전해주지 않기 때문에 민간 정치자금 모집단체인 '슈퍼팩(SuperPAC)'이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다. 반면 한국의 경우 대선에서 득표율 10%를 넘으면 사용액의 절반, 15%를 넘으면 전액을 국가가 보전해준다. 물론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보전해준다. 기업들로부터 돈을 거둬 논란이 됐던 2002년 '차떼기 선거'의 여파로 2004년 완전 선거공영제가 도입된 덕분이다. 다만 후보들이 미리 자체적으로 돈을 당겨쓰고 나중에 돌려받는 구조다.
18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원내 6개 정당에 총 421억원의 선거보조금을 지급했다. 더불어민주당(119석)은 123억5700만원, 자유한국당(93석)은 119억8400만원, 국민의당(39석)은 86억6800만원을 받았다. 바른정당(33석) 63억3900만원, 정의당(6석) 27억5500만원, 새누리당(1석)도 3200만원을 각각 받았다.
하지만 정당들은 이 정도 돈으로는 선거비가 부족하다는 판단에 따라 대출과 펀드 모집 등을 통해 많게는 수백억원을 더 충당할 계획이다. 2012년 대선때 '담쟁이 펀드'로 300억원을 모았던 문재인 후보는 이번엔 '국민주 문재인'으로 이름을 바꾼 펀드(연이율 3.6%) 모집을 19일 시작한다.
반면 안철수 홍준표 유승민 후보 등은 펀드 모집 계획이 없다. 펀드 모집은 절차가 복잡한 반면 지지층을 규합하고 세를 과시하려는 전략적 목적이 깔려 있다. 국민의당은 펀드 대신에 자발적 소액 후원금을 모으고 나머지는 대출로 해결할 계획이다. 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후보 지지율이 높아 선거비용 전액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큰데다 별도의 선거보조금까지 받아 주머니가 두둑한 반면 다른 정당들은 고민이 깊다. '매직넘버' 15%까지 갈 길이 험난하기 때문이다.
한국당은 당사를 담보로 250억원 대출을 받는 등 일단 '실탄' 500억원을 장전했다. 벌써 유세차량, 선거사무원, 법정 홍보물 등에 200억원 가량을 집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15%를 넘지 못하면 당이 빚더미에 오르게 되기 때문에 최대한 비용을 아낄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사실 선거비용의 대부분은 유세차량과 각종 매체 홍보비, 선거운동원 인건비다. 유승민 후보가 지금도 '중도 사퇴설'에 시달리는 것도 돈 때문이다. 선거보조금 63억원을 받았지만 이 중 일부를 떼어 당직자들의 밀린 월급부터 줘야할 처지다. 바른정당은 100억원 이내로 총비용을 낮추고 인터넷 광고도 포기했다.
바른정당 오신환 의원은 유세차 대신에 전기 스쿠터를 개조한
[신헌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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