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가 지난달 31일 국방부가 업무보고 과정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발사대 4기 추가 반입 사실을 고의로 누락했다고 밝히면서 이번 사태가 '국기 문란' 사태로 번지는 모습이다. 청와대는 군(軍) 수뇌부 내 일부 인사들이 새정부에 대한 반감 또는 불신을 갖고 사실상 허위보고를 한 것으로 보고 있어, 이번 사드 보고 파문 관련자들에 대한 고강도 조사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리핑에서 "국방부 정책실장 등 군 관계자 여러 명을 불러 보고누락 과정을 집중조사한 결과, 국방부가 4기 추가 사실을 보고서에서 의도적으로 누락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윤 수석은 "국방부 실무자가 당초 작성한 보고서 초안에는 '6기 발사대 모 캠프에 보관'이라는 문구가 명기돼 있었으나 수차례 강독 과정에서 문구가 삭제됐다"며 "이 부분은 피조사자 모두 인정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최종적으로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에게 제출한 보고서에는 '6기, 캠프명, 4기 추가 반입' 등 문구 모두가 삭제됐고, 두루뭉술하게 '한국에 전개됐다'는 취지로만 기재됐다"고 덧붙였다.
청와대의 이날 발표는 사드 발사대 추가반입 사실 보고 누락이 단순 실수가 아니라 국방부가 조직적으로 관련 내용을 은폐하려 했다는 데 방점이 찍힌 것으로 풀이된다.
◆국방부, 靑 보고 때 발사대 추가반입 보고 누락
청와대 발표에 따르면 지난 26일 위승호 정책실장 등 국방부 관계자들은 청와대 국가안보실의 정의용 실장, 이상철 제1차장, 김기정 제2차장에게 업무보고를 하는 과정에서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반입 사실을 보고하지 않았다. 군 출신인 이 차장이 "보고가 석연치 않다"면서 국방부 참석자 중 1명에게 따로 남으라고 지시했다. 이후 3시간 뒤 재개된 별도 보고에서 이 차장은 국방부 관계자에게 세부 사안을 조목조목 따지기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사드 발사대 추가 반입 사실을 파악했다. 이 차장은 다음날인 27일 정 실장에게 이 같은 사실을 보고했다.
정 실장이 28일 한민구 국방장관과 오찬을 하면서 "사드 4기가 들어왔다면서요"라고 묻자, 한 장관은 "그런 게 있었습니까"라고 반문했다. 관련 내용을 이미 보고 받은 정 실장으로선 한 장관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더 이상 따져묻지 않고 화제를 돌렸다.
정 실장은 29일 문재인 대통령에게 국방부 보고서와 국방부의 사드 보고 누락 사실을 정리한 별도 보고서를 동시에 올렸고, 문 대통령은 이에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 측은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반응이 "국가와 국민의 운명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드 반입이 국민도 모른 채 진행이 됐고, 새정부 들어 한미정상회담을 목전에 둔 시점인데도 국방부가 이 같은 내용을 의도적으로 보고하지 않은 것에 대해 충격을 받았다고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문 대통령의 "충격적"이라는 발언을 두고 언론과 야당에서 "대통령이 정말 그때까지 사드 4기 추가 반입을 몰랐다는 말이냐"는 의문을 제기한 것을 의식한 설명이다.
◆사드 사태는 '국기문란' 軍 인사태풍 오나
문 대통령은 정 실장 보고 다음날인 30일 한 장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사드 발사대 4기 추가 반입 사실을 최종 확인했다. 한 장관은 28일 정 실장과의 오찬 때와는 달리 문 대통령의 질문에 곧바로 추가 반입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정 실장을 통해 한 장관의 오찬 때 발언과 국방부 측의 보고 누락 사실을 인지하고 있던 문 대통령은 이 과정에서 대단히 격노했다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문 대통령은 한 장관과의 통화 직후 정 실장과 조국 민정수석에게 이번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를 지시했고, 청와대는 곧바로 국방부 관련자들을 불러 경위 파악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보고서 초안에 있었던 '발사대 6기' 등 문구가 삭제된 사실이 파악됐다.
청와대 내에서 이번 사안을 '국기문란'으로 보는 기류가 있어, 조사 결과에 따라 군내 인사태풍이 몰아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정치권 관계자는 "군 수뇌부 사이에 문 대통령을 군통수권자로 인정하지 않는 기류가 있다는 점이 드러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이슈가 국가 안보 등 기밀과 관련된 사항이라는 점에서 구체적인 조사방법과 대상 등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다만 사드 배치 초기부터 이 문제에 관여해 온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라인의 핵심인물들은 조사를 피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기밀 보고서를 작성해 보고한 과정을 보면 결재 라인에 한민구 국방장관도 포함되나'라는 물음에 "공식적으로 보면 그렇다고 봐야 한다"고 대답했다.
◆한민구 "보고 누락 지시한 적 없다" 軍 "포대 발사대 6기는 기본이고 상식"
논란의 중심에 선 한 장관은 이날 청와대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발사대 4기 반입 사실을 누락한 경위를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제가 지시한 일 없다, 지시할 일도 아니다"라고 답했다. 이어 "보고서는 실무선에서 만든 것"이라며 "실무자들은 표현 속에 포함됐다고 봐서 숫자 표기를 안 했다는 것(으로 본다)"이라고 설명했다.
한 장관은 정 장과의 오찬에서 사드 발사대 4기 반입에 관해 '그런 게 있었습니까'라고 반문했다는 청와대 측 발표에 대해서는 "대화를 하다 보면 서로 관점이 차이 날 수 있고 뉘앙스 차이라든지 이런 데서 그런 차이점이 있다"면서 "서로 주고받은 것을 이해하는 수준에서 차이가 있을 수 있다"고 해명했다.
군 수뇌부에 대한 고강도 조사 방침이 천명되자 군내에선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나오고 있다. 포대 발사대가 6개라는 것은 군에는 상식이고 기본인데, 이걸 두고 청와대에서 군의 충성을 의심하는 내용의 발표가 계속되자 황당하다는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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