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초대 내각 인사의 원만한 정치적 합의 가능성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12일 추가경정예산 관련 국회 시정연설을 앞두고 야당 지도부를 만나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을 요청할 예정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물론 국민의당도 '강경화 불가' 당론을 굽히지 않고 있어, 결국 청와대가 외로운 결단을 해야할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12일 국회인사청문특위와 정무위 회의를 각각 열어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인사청문보고서 채택을 논의할 예정이다. 반면 강경화 후보자의 경우 정의당을 제외한 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권이 공히 부적격 후보자로 분류하고 자진사퇴나 문재인 대통령의 지명철회를 요구하고 있어 외교통일위 회의 일정 자체가 잡히지 못한 상태다.
또한 강 후보자의 거취 여부가 김이수·김상조 후보자의 청문보고서 채택과 패키지로 맞물려 꼼짝달싹 못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강경화 딜레마'가 문재인 정부 초반 여야 협치와 국정운영에 대형 암초로 작용하고 있는 셈이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여야 대치 과정에서 '캐스팅 보트' 역할을 하고 있는 국민의당이 '강경화 불가, 김이수 유보, 김상조 협조'의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 현 정국에서 중요한 지점이다.
11일 국민의당 김동철 원내대표는 강 후보자에 대해 "민간의 연안 여객선 선장으로서는 맞았을지 모르지만, 전시에 대비할 항공모함 함장을 맡길 수는 없다"고 비유한 뒤 "대통령이 청문과정을 테이프로 한번 보고 판단하면 좋겠다는 생각"이라며 명확한 반대의사를 재확인했다.
김 원내대표는 한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외교부 장관을 비워둘 수 없다는 청와대와 여권의 언급에 대해 "자질과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 분에게 대한민국 외교를 어떻게 맡기느냐. 실험대상은 아니지 않으냐"며 "저희도 동의하지 못한 데 대해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대통령이 하루빨리 철회하든 자진사퇴시키든 하고 적격한 후임자를 빨리 발탁해 국회에 보내면 조기에 청문절차를 진행, 하루빨리 외교부 장관을 임명하는 데 협조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는 마지막까지 강경화 외교부장관 후보자 구하기에 총력전을 펼친다는 방침이다.
문 대통령은 12일 국회를 찾아 일자리 추경 처리를 당부하는 시정연설에 앞서 정세균 국회의장과 야당 지도부를 만나 티타임을 가지면서 강 후보자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에 대한 협조를 구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 제윤경 원내대변인은 "반드시 후보자 한 명은 낙마시키겠다는 야당의 고집을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존재감 과시를 위해 낙마시키려는 속내를 국민이 모를리 없다"며 야당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였다.
지난 10일에는 한승주·공로명·한승수·윤영관·송민순·유명환 등 전직 외교부 장관 10명이 '외교부 감싸기'에 나섰다. 진보·보수 정권에서 외교부 장관을 역임한 이들은 "강 후보자는 오랜 유엔 고위직 근무와 외교활동을 통해 이미 국제사회에서 검증된 인사다. 주변 4강 외교 뿐 아니라 우리나라가 당면한 제반 외교사안을 능동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다만 문 대통령의 이같은 설득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당 등 야당 태도에 변화가 없으면 문재인 정부는 야당과의 강대강 대결로 임기 초반을 시작할 전망이다. 청와대 관계자가 '임명 강행 여부'를 묻는 질문에 "현재로선 답변하기 어렵다"고 했지만 문 대통령이 임명을 철회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여당 지도부와의 만찬에서 "백퍼센트 흠결이 없는 사람은 없지만 최선을 다해 국회를 설득하겠다. 진심으로 정성을 다하는 게 최선의 방법 아니겠냐"고 했다. 최대한 야당을 설득하겠다는 입장이지만 6월말 예정된 한미정상회담을 외교부장관 없이 진행하기 어려운만큼 국회에서 인사청문 보고서가 채택되면 결과에 관계없이 임명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정국이 경색되면서 문 대통령이 2006년 2월 당시 야당이었던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우식 과기부총리·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종석 통일부장관 내정자 임명을 강행한 참여정부의 전례를 따르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전임 정권 시절에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임명에 대한 야당의 '부적합' 판정에도 불구하고 임명을 강행하자 야당이 바로 해임건의안을 제출하는 등 정국이 급속도로 경색된 바 있다.
김이수·김상조 후보자에 대한 청문보고서 채택도 만만찮을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당 측은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못마땅하고 청와대가 국민의당 주장을 안 들어준다고 해서 헌재소장 후보자를 낙마시키거나 하는 식으로 불똥이 튀는 건 옳은 방식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외교부 장관
하지만 한국당과 바른정당은 강 후보자의 퇴진 없이는 다른 인사청문회 후보자 통과는 물론 국회 일정 자체도 보이콧 할 수 있다며 강경한 자세를 굽히지 않고 있다.
[전범주 기자 / 정석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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