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빗방울이 내리던 15일 오전 8시30분.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참모진을 비롯해 보훈부처 관계자들과 서울 용산구 효창공원에 위치한 백범 김구 선생 묘역에 참배했다. 문 대통령은 독립지사에게 예를 갖추기 위해 우산없이 비를 맞으며 묘역 앞 재단에 헌화했다.
반면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일본 종전일(패전인)인 이날 희생자 추도식에서 5년 연속 일본의 전쟁 가해 사실을 언급하지 않았다. 또한 아베 총리는 대리인을 보내 야스쿠니신사에 공물 대금을 내면서 "참배에 갈 수 없어 죄송하다"고 밝혔다.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는 거리가 먼 행보였다.
문 대통령이 이날 김구 선생 묘역에 찾아간 것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현직 대통령으로선 두번째이다. 방명록에는 "선열들이 이룬 광복, 정의로운 대한민국으로 보답하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문 대통령은 이어 이봉창·윤봉길·백정기 의사의 묘와 안중근 의사의 가묘가 있는 삼의사 묘역으로 이동해 헌화하고 참배했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우리나라에도 독립유공자, 참전용사 등 애국하신 많은 분들을 위한 보훈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 72회 광복절 경축식에서 새로운 한일관계 정립을 위한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했다.
문 대통령은 "한일관계도 이제 양자관계를 넘어 동북아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함께 협력하는 관계로 발전해 나가야 할 것"이라며 "과거사와 역사문제가 한일 관계의 미래지향적인 발전을 지속적으로 발목잡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새롭게 한일관계를 재정립하는 동시에 한일 과거사문제도 풀어가는 투트랙 외교방침을 재차 설명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정부는 새로운 한일관계 발전을 위해 셔틀외교를 포함한 다양한 교류를 확대해 갈 것"이라며 "당면한 북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공동 대응을 위해서도 양국 간의 협력을 강화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한일관계 미래를 중시한다고 해서 역사문제를 덮고 넘어갈 수는 없다"며 "오히려 역사문제를 제대로 매듭지을 때 양국 간의 신뢰가 더욱 깊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과거 일본 책임을 직시하려는 일본 내 많은 정치인들과 지식인들의 노력을 특별히 언급하면서 "이러한 역사인식이 일본의 국내 정치 상황에 따라 바뀌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군 위안부와 강제징용 등 한일 간의 역사문제 해결에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와 국민적 합의에 기한 피해자의 명예회복과 보상, 진실규명과 재발방지 약속이라는 국제사회의 원칙이 있다"며 "우리 정부는 이 원칙을 반드시 지킬 것이기에 일본 지도자들의 용기있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일본(2020년 도쿄 하계올림픽), 중국(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연달아 개최되는 스포츠 행사를 동북아시아 평화와 경제협력을 촉진하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하자고 요청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과 중국, 일본은 역내 안보와 경제협력을 제도화하면서 공동의 책임을 나누는 노력을 함께 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아베 총리는 이날 시바야마 마사히코 자민당 총재특별보좌를 야스쿠니신사에 대신 보냈다고 일본 언론들이 전했다. 시바야마 특보는 "아베 총리가 '참배에 갈 수 없어 죄송하다'며 확실히 참배하고 오라고 지시했다"고 밝혔다. 공물 대금은 사비로 냈다고 밝힌 시바야마 특보는 "아베 총재의 명을 받고 전쟁에서 희생된 선인들의 영령에 애도의 뜻을 전했으며 평화에 대한 의지를 새롭게 되새겼다"고 덧붙였다.
아베 총리는 지난 2013년 12월 26일 야스쿠니 신사를 직접 참배해 주변국들의 반발을 불러온 적이 있다. 다만 매년 8월 15일에는 직접 참배하는 대신 공물 대금만 내왔다.
이날 '모두 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소속 여야의원 63명은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 참배했다. 이와는 별도로 아베 총리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간사장 대행과 고이즈미 신지로 수석부간사장 등도 야스쿠니신사를 찾았다. 야스쿠니신사는 일본의 전사자 246만여명의 영령을 받드는 시설로 1946년 극동군사재판(도쿄재판)에서 A급 전범(전쟁을 기획·주도)으로 분류된 14명도 합사돼 있다.
아베 총리는 또 이날 도쿄 부도칸에서 열린 '전국 전몰자 추도식'에선 "전쟁의 참화를 두 번 다시 반복해서는 안 된다"고만 밝혔다. 아베 총리는 2012년 말 취임 후 올해까지 5번의 추도식에서 일본이 주변국에 피해를 줬다는 등의 표현은 한번도 한적이 없다. 이에 비해 아키히토 일왕은 추도식에서 "과거를 돌이켜보며 깊은 반성과 함께 앞으로 전쟁의 참화가 재차 반복되지 않기를 바란다"며 3년 연속 '깊은 반성'이란 표현을 썼다.
한편 서울의 일부 시내버스 노선에 소녀상이 설
[도쿄 = 정욱 특파원 / 서울 = 강계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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