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기라도 해보자" 대문 앞서 대기…건설현장 노동자·생활관리사 만나
주민들 "추후 내놓는 정책으로 '한달살이' 판단할 것"
한 달간 '강북살이'에 나선 박원순 서울시장의 옥탑방 앞이 민원인들로 북적이고 있습니다.
오늘(30일) 서울 강북구 삼양동의 옥탑방 앞에는 '누구를 위한 시장정비 사업인가? 50년 전통시장 승계 유지하라'는 팻말을 들고온 여성 세 명이 있었습니다.
서울 구로구 오류시장에서 41년간 떡집을 했다는 서효숙 씨는 혹시나 박 시장을 만날 수 있을까 싶어 새벽 5시에 옥탑방 앞에 도착했다고 전했습니다.
오류시장은 전통시장을 쓸어내고 21층짜리 주상복합을 올린다는 계획이 세워진 곳이나, 정비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동의율을 맞추려고 불법 '지분 쪼개기'를 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서 씨는 "지난 13일 법원이 오류시장 정비사업추진계획에 대한 서울시 승인은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며 "이런 판결까지 나왔는데 시장정비를 강행할 건지 박 시장에게 묻고 싶어 왔다"고 말했습니다.
박 시장은 찾아온 민원인들을 집 앞 평상으로 들여 잠깐이라도 얘기를 나눴습니다.
박 시장과 15분가량 대화를 하고 나온 서 씨는 "말도 안 되는 행정 때문에 질식할 것 같았는데 숨통이 조금은 트인 것 같다"며 "합리적인 전통시장 발전 방안을 모색했으면 한다"고 말했습니다.
박 시장의 강북구 '한 달 살이'가 보여주기식 '쇼'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지만, 이날 만난 강북구 주민과 집 앞까지 찾아온 민원인들은 일단 서울시장이 얘기를 들어주는 것 자체에 만족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삼양동에서 51년 거주했다는 62살 김행자 씨는 "손자·손녀가 놀러 와도 동네에 데리고 나갈 놀이터가 없고 주차 문제도 심각하다"며 "박 시장이 살다 가면 동네가 조금이라도 좋아질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크다"고 말했습니다.
박 시장은 이날 강북구노인종합복지관을 찾는 것으로 첫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도 민원이 쏟아졌습니다. 독거노인 등의 안부를 살피고 돕는 '생활관리사'들은 처음에는 머뭇거렸으나 하나둘 입을 뗐습니다.
김정숙 씨는 "4월에 고독사한 노인을 발견하고 트라우마가 생겼다"며 "어르신이 화장실에서 험하게 돌아가신 모습을 본 이후 지금도 화장실을 제대로 못 가고 관리하는 어르신들이 전화를 안 받으면 불안 증세가 나타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생활치료사들의 트라우마 치료에 도움을 줬으면 한다"고 요청했습니다.
한 생활관리사는 "처음에 일을 시작했을 때는 무기계약직이었으나 작년부터 1년 단위 계약직으로 변경됐다"며 "성심껏 어르신을 모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달라"고 말했습니다.
생활관리사들의 애로사항을 들은 박 시장은 우선 현재 비어있는 강북구보훈회관과 공영주차장을 활용해 제2노인복지관을 짓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박 시장은 "노인 인구가 계속 늘어나고 있어 지금의 복지관으로는 부족하다"며 "제가 (강북구를) 떠나면 모든 게 무효이니 있는 동안 (제2노인복지관 건립) 초안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1년 단위 계약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요청에 대해선 "생활관리사들이 지속가능한 처우를 받을 수 있도록 주관 부처인 보건복지부에 요청하겠다"고 답했습니다.
또 "강남과 다른 강북의 정신과 비전은 따로 있다"며 "서울시가 기반시설을 많이 해드릴 생각"이라고 약속했습니다.
노인복지회관에 이어 찾은 미아동 3-770번지 재개발 아파트 건축 현장에서도 현장 노동자들의 민원이 이어졌습니다.
이들은 하도급 업체들이 임금·자재·장비 대금을 체불 당하지 않게 하려고 서울시가 운영하는 '대금e바로' 시스템이 현장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공사현장마다 설치하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에 노동자가 제외된 곳도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건설현장에 안전 펜스를 제대로 쳐주지 않았다고 고발하기도 했습니다.
박 시장은 "건설현장에서 사망 사고가 1명이라도 나면 5년간 서울시 입찰에서 전면 제외한다"며 "망하는 게 좋은지, 안전을 지켜서 제대로 되는 게 좋은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폭염과 관련해 가장 뜨거운 시간대 작업을 아예 중단하는 등 사고는 미리 예방하는 게 좋다고 강조했습니다.
박 시장은 전날 저녁 삼양동 집 인근 식당에서 밥을 먹던 중 공사현장 직원들을 만나 더위 해소를 위해 공사장에서 쓰는 제빙기가 부족하다는 얘기를 들었다며 "제빙기 몇 대를 놓고 있는 것이냐"고 묻기도 했습니다.
오전 마지막 일정은 강북구청에서 열린 폭염 대책회의였습니다.
박 시장은 "아직 서울에는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1명도 없어 다행"이라며 "서울시나 구청이 보유한 공공장소에 폭염에 취약한 어르신들 잘 모셔서 이 시기를 잘 넘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앞으로 남은 3주간의 옥탑방 생활 동안 박 시장에게는 수많은 민원이 직접적으로 쏟아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날 삼양동에서 만난 한 주민은 "지금은 '쇼'라는 얘기도 들리는데, 박 시장의 강북구 거주 성공 여부는 떠난 뒤 강북구에서 들은 주민 목소리를 어떻게 반영하고, 챙기는지 보고 판단하면 될 것 같다"고 생각을 밝혔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