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7월 31일 서울 뉴코아 강남점, 2007년 11월 14일 여수 GS칼텍스, 2008년 11월 25일 서울 등촌동 콜텍 본사, 2011년 5월 24일 충남 아산시 유성기업….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언급한 시간과 장소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바로 경찰특공대가 출동한 곳이라는 점입니다.
경찰특공대의 임무는 알려진 대로 대테러 작전이나 인질 구출입니다.
그런데 노사간 다툼이 있는 곳에 노조를 막으려고 이 천하의 경찰특공대가 투입된 겁니다.
그 화룡점정은 바로 2009년 8월의 쌍용자동차 평택공장이었습니다.
■ 9년 만에 드러난 공권력 남용의 민낯
경찰과 민간의 합동조사단 격인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어제(28일) 충격적인 결과를 내놨습니다.
2009년 8월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쌍용차 평택공장 노조 진압 사건의 배후에 당시 청와대가 있었고, 경찰의 숱한 과잉 진압 사실을 확인한 겁니다.
특히 100명의 경찰특공대는 대테러장비로 분류된 다목적발사기와 테이저건까지 이용했고, 헬기까지 동원해 공중에서 발암물질이 함유된 최루액을 뿌렸습니다.
9년 만에 세상에 드러난 공권력 남용의 민낯, 사실상의 국가폭력 행위 앞에서 경찰은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당시 진압 작전에 투입됐던 한 대원은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를 받던 중 "경찰인 내가 대체 왜 시민들을 제압하기 위해 여기에 온 건지 혼란스러웠다"며 고개를 숙이기도 했습니다.
■ "지시를 따랐을 뿐"…잘못은 인정하지만 억울하다는 경찰
그런데 경찰 내부에선 다른 목소리도 상당합니다. 과잉 진압은 분명히 잘못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경찰은 어떤 곳보다 상명하복 식 위계질서가 강한 조직인데, 일개 특공대원이 상사의 지시를 어기고 출동과 진압을 거부할 수가 없다는 거죠.
이는 역시 진상조사위원회가 과잉진압으로 판단한 2015년 민중총궐기 때 투입됐던 경찰들의 하소연과도 일맥상통합니다.
실제로 집회·시위 등 현장에 자주 투입됐던 경찰들은 요즘 들어 "허탈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몽둥이를 휘두르는 일부 과격 시위대를 온몸으로 막았을 뿐인데, 지금 와서 자신들이 한 일이 모두 '적폐'가 됐다"는 겁니다.
한 경찰은 "시위대는 무조건 '정의'고, 이를 저지한 경찰은 '불의'입니까?"라고 되묻기까지 했습니다.
■ 소송 취하하면 배임으로 고발 가능성 있어
이제 경찰들의 관심은 소송 취하 여부로 쏠리고 있습니다.
진상조사위원회가 경찰이 과잉진압을 했으니 쌍용차 주최 측에 낸 손해배상 소송도 취하하라고 권고했는데, 경찰 지휘부가 이를 받아들일지 거부할지 지켜보고 있는 겁니다.
사실 경찰 내부에선 과잉 진압에 대한 반성과 불법 시위에 대한 대처는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우리가 '불의'냐"고 되묻는 경찰들과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겠네요.
특히 소송을 취하하면 법적인 문제가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현재 쌍용차 관련 소송은 2심 판결까지 나오고 3심이 진행 중인데, 법원은 현재까지 경찰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손해배상 청구액 16억 원 중 11억 원을 노조가 배상하라고 한 건데, 이를 취하하면 경찰청장이 배임으로 고발당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지난해 정부가 제주 강정마을 주민 등을 상대로 해군이 제기한 구상권 청구소송을 철회하자 야당이 이낙연 국무총리 등을 고발한 바 있습니다.
■ 민갑룡 경찰청장의 선택은?
민갑룡 경찰청장은 아직까진 "신중히 검토하겠다"는 원론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습니다.
"위법한 진압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진상조사위원회의 주장과 "이대로면 공권력이 무너진다"는 경찰의 주장을 놓고 고민하는 모양새입니다.
3심까지 간 상태여서 강행과 취하라는 두 가지 선택지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 민 청장은 어느 방향이든 결론을 내려야만 합니다.
지난 7월 취임 이후 순탄한 행보를 해 온 민 청장,
[ 김한준 기자 / beremoth@hanmail.net ]
◆ 김한준 기자는?
=> 현재 경찰청 출입기자.
2005년부터 기자 생활을 시작해 정치부, 사회부, 경제부 등을 거친 뒤 2016년 4월부턴 사회부 사건팀에서 경찰청을 맡고 있습니다. 현재를 비난하면서 과거를 찬미하는 나쁜 습관을 버리기 위해 모든 사안을 밝게 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