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반도를 둘러싼 분위기가 싸늘하다. 미국과 북한의 비핵화 대화가 좀처럼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문재인 정부도 점차 중재자 동력을 잃어가고 있다. 연내로 약속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서울 답방도 실현 불가능한 모양새다. 여기에 미국과는 방위비 협상 불발로, 일본과는 외교 갈등으로 한·미·일 동맹에도 금이 가고 있다. 국내에서는 섣부른 9.19 남북군사합의로 안보에 구멍이 뚫렸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른바 '연말 한반도정세 5대 악재'다.
◆겉도는 미·북 대화
지난 6.12 싱가포르 정상회담에서 만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가능한 빠른 시일 안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해당 고위인사 사이의 후속협상을 진행한다'는 데 합의했다. 그러나 비핵화 조치를 먼저 진행시키길 원하는 미국과 제재 완화를 먼저 요구하는 북한 간 이견 차이가 좁혀지지 않았다. 현재 고위급 회담과 2차 미·북 정상회담은 내년을 기약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에 미국 조야에서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의심이 확산하고 있다. 반면 북한은 제재 완화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미국에 대한 불만이 고조되면서 양국이 신경전 국면으로 돌입하는 형국이다. 그간 북한 '비핵화 진심'의 보증을 서온 문재인 정부는 아직까지 효과적인 중재 방안을 찾지 못해 고심하고 있다. 연내 마지막 중재 기회였던 문 대통령의 국제회의 정상외교는 제12차 아셈(ASEM)정상회의에서 대북제재 완화 요구 논란,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참가 전 '체코 의전 참사 논란' 등을 남겼을 뿐이다.
◆北김정은 연내 답방 무산
문재인 정부는 그간 한반도 평화를 앞당기기 위해 빠른 남북 관계 개선을 추구해왔다. 남북 관계를 선행시켜 미·북 관계를 따라오게 만든다는 전략이었다. 그러나 예상보다 미·북 대치 상태가 길어지자 앞서간 남북 공조는 '무리수'가 되고 말았다.
문재인 정부는 이번달 13~14일, 18~20일 등 여러 날짜를 제시하고 북한 측 답변을 기다렸으나 기대했던 반응은 끝내 오지 않았다. 북측에선 답방을 위해선 미국과의 비핵화 대화에서 더 성과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남북 경협이나 대북제재 완화 등을 더 밀어붙여주길 기대했는데 그렇지 못한 데 대한 불만이 크다는 관측도 제기됐다. 정부로서는 야당이 친북 외교, 저자세 외교 등으로 공세에 나설 빌미를 주며 공연히 남남 갈등만 키운 꼴이 됐다.
◆수렁 빠진 한일 외교
대북 공조가 중요한 이때 한일 관계는 연일 반목을 거듭하고 있다. 우리 대법원은 지난 10월 30일 우리 대법원의 '신일철주금 강제징용' 소송 피해자 승소 판결을 내렸으며, 여성가족부는 11월 21일 지난 2015년 위안부합의의 핵심인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어 11월 29일에는 대법원이 미쓰비시를 상대로 한 근로정신대 사건과 강제징용 소송에 대해서도 승소 판결을 내렸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판결 뒤인 11월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폭거"이자 "국제질서에 대한 도전"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이에 이낙연 국무총리가 "일본 정부 지도자들이 과격한 발언을 계속하는 데 대해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자제를 촉구하는 등 출구 없는 대치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11월 6일 우리나라의 조선산업 지원을 문제 삼아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등 경제 보복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어 우려를 더하고 있다.
◆한미 방위비협상 연내 타결 불발
한미 양국이 지난 11~13일 서울에서 진행된 제10차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 회의에서도 타결을 보지 못했다. 핵심 이견인 분담금 총액을 둘러싸고 양측 대표단의 입장 차이가 아직도 큰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7일 미국 협상단이 지난해 대비 150% 수준인 연간 12억 달러(약 1조3600억원)의 분담금 인상안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우리 정부는 한미 동맹 강화와 원활한 북핵 공조 위해 돈을 더 내야 하는지를 놓고 고민하고 있다. 그러나 한미 동맹의 가치를 돈으로 계산하는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국내 비판 여론도 커지며 딜레마에 처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협상 내용과 상관 없는 것들도 레버리지로 삼는 경향이 있는 만큼 대북 공조 국면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남북군사합의로 안보 구멍 우려
지난 9월19일 이뤄진 남북군사합의를 둘러싼 잡음이 계속되고 있다. 지난 11월 21일 서울에서 토론회를 연 '안보를 걱정하는 예비역 장성 일동'은 이번 군사합의로 우리 안보가 위태로워졌다고 비판했다. 안보 의식 전선에 큰 균열이 생긴 것이다. 이에 국방부는 정경두 장관이 13일 예비역 장성 단체인 '성우회' 정기총회에 직접 참석해 합의에 대해 설명하는 등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백방으로 뛰고 있다. 그러나 총회에 참석한 김병관 육사 총동창회장(예비역 대장) 등이 "정부가 북한 비핵화 관련 정책을 너무 서두르는 경향이 있다"고 반박하는 등 쉽게 불만이 사그라들 조짐이 없다.
북한은 사사건건 무기 시비를 걸며 이러한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얼마 전 우리 정부의 탄도탄 레이더와 해상초계기, 요격미사일 도입 사업을 두고 "9.19 군
[안정훈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