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25일 정상회담을 한다고 크렘린궁이 23일 공식 확인했다. 북·러 정상회담은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 섬 내 극동연방대학에서 열릴 것으로 유력하게 점쳐지면서 '장소가 갖는 의미'에도 관심이 쏠린다.
'러시아의 섬'이란 뜻의 루스키섬은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지난해 1차 미·북 정상회담을 한 싱가포르의 센토사섬과 같이 지리적으로 보안에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육지와 연결된 교량만 통제하면 보안 및 경호가 매우 용이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개최를 위해 건설한 세계 최장 사장교(斜張橋)인 루스키대교를 건너야 섬으로 갈 수 있다.
루스키 섬은 소비에트 체제 하에서 극동지역 군사 기지로서 중추 역할을 했다. 소련 최대의 해군훈련기지가 자리잡고 있었던 곳이다. 하지만 소비에트 체제가 무너진 이후 루스키섬은 군사기지로서의 기능을 잃어갔고 황폐한 섬이 돼버렸다. 지난 2000년대 중반 러시아 정부가 극동지역의 군사·경제적 가치에 주목하면서부터 여러 변화가 나타난다.
러시아 정부는 2012년 APEC 정상회의 개최지를 블라디보스토크 루스키 섬을 정하고 대대적으로 개발에 나섰다. 극동 연방대학의 새로운 캠퍼스도 조성하고, 대통령 극동지역 공관도 지었다.
북한전문 외신인 NK뉴스는 최근 아르촘 루킨 극동연방대 교수를 인용해 이 대학이 위치는 물론 푸틴과의 인연도 있어 이상적인 정상회담 장소라고 언급한 바 있다.
루킨 교수는 "이 대학 캠퍼스는 푸틴 대통령의 동쪽 거주지라고 불릴 만하다"면서 "이곳이 2012년 푸틴의 개인적 지시로 지어졌고 푸틴이 이곳을 매년 주로 초가을에 방문한다"고 했다.
루스키섬은 중국 최고지도자의 여름 휴양지인 베이징 북쪽의 베이다허, 트럼프의 마러라고 리조트와 비견될 만한 곳으로 '극동의 크렘린궁'의 기능을 하는 셈이다.
또한 러시아 정부 차원에서 극동 지역 관광지로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있다. 러시아에서 가장 큰 아쿠아리움이 있고 나아가 관광객들에게는 해변 트레킹 코스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고 한다.
회담장으로 꼽히는 극동연방대학은 루스키섬 내에 위치해 있으며 러시아 극동지역 최대 종합대학이다. 극동연방대는 지난 1899년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지시로 설립된 동방지역연구소가 모태다. 학교는 1899년 차르 니콜라이 2세의 특별 명령에 따라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몽골어, 만주어를 가르치는 대학으로 세워져 지금에 이르고 있다. 한국어과를 개설하는 등 학교 자체가 한국학에 강점이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2012년 APEC 정상회담도 이곳에서 열리면서 유명세를 탔다. 이 대학에서는 푸틴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추진하는 동방경제포럼도 매년
국제 행사 경험이 많다는 점에서 북·러 정상회담 장소로 손색이 없는 셈이다. 러시아 정부는 루스키 섬에 국제학교들을 건설해 아시아 지역 학생들을 유치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김정범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