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이 언론에 대한 징벌적 배상제도 도입을 촉구하며 한달새 4차례나 언론을 작심 비판하고 나섰다.
지난달 1일 서울시 산하 tbs교통방송에 출연해 "조국 법무장관 일가에 대한 무자비한 검찰 수사가 이어지고 언론의 피의사실 흘리기가 계속된다"고 비난한 이후 한달 넘게 언론에 대한 공세를 펼치고 있는 것이다.
박 시장은 지난 3일 KBS 1TV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진보든 보수든 잘못된 보도가 나오면 개인은 엄청난 피해를 본다"며 "악의적으로 왜곡 보도를 한다면 누구라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저는 인권변호사로서 언론의 자유가 기본권 중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다만 '아니면 말고' 식의 무책임한 보도는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취지에서 징벌적 배상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잎사 박 시장은 지난달 25일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출연해 같은 주장을 펼치며 "게임규칙을 위반하면 핀셋으로 잡아서 운동장 밖으로 던져버려야 한다"며 "왜곡해서 기사를 쓰면 완전히 패가망신하게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그는 지난 1일에도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언론개혁을 언급한 것을 두고 주요 언론들의 심기가 불편했나 봅니다... 의혹 부풀리기 보도, 받아쓰기하는 문제는 정말 심각합니다"라고 비꼬기도 했다.
박 시장이 최근 들어 '언론 공격'의 선봉에 나선 것은 여권 지지층을 흡수하고 차기 대선주자로서 입지를 다지기 위한 전략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서울시장직을 맡은지 벌써 8년째인데도 자신에 대한 지지율이 고작 3~4%대인 상황에서 대언론 공세를 지렛대삼아 이를 만회하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여권내 차기 잠룡으로 꼽히던 조국 전 장관과 김경수 경남지사, 이재명 경기지사, 안희정 전 충남지사 등이 온갖 악재로 잇따라 발목이 잡힌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언급한 '언론개혁' 이슈를 자신이 주도할 경우 대선 가도에서 승산이 있을 것으로 판단했을 공산이 크다.
일각에선 박 시장이 '조국 사태'를 지켜보면서 향후 대권 도전시 자신과 가족에게 쏟아질 언론의 집요한 의혹 제기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지난해 11월 "박 시장의 딸이 지난 2002년 국립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진학했는데, 그 이후 서울 법대로 전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면서 "박 시장의 딸이 입학한 2002년부터 전과가 폐지된 2009년까지 미대에서 법대로 전과한 학생은 박 시장 딸 한 명뿐이라는 점도 이 의혹의 근거"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그러면서 "그 때 당시 서울대 법대 교수가 누구였는지, 언론인 여러분들이 밝혀달라"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박 시장은 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 시절인 2009년6월 "국가정보원이 자신과 주변을 사찰하고 후원기업을 압박하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했다가 국정원으로부터 2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당한 장본인이다.
당시 조국 전 장관은 언론 기고를 통해 "박 변호사가 일정한 근거를 갖고 국정원 사찰의혹을 제기한 것이 국가 명예를 훼손한 불법행위라는 주장은 법리적으로 당찮다. 국가와 정부기관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국가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표현의 자유는 휴지조각이 되고 말 것이다"고 박 시장을 옹호했다.
이같은 주장은 언론에도 똑같이 적용될 수 있다. 살아있는 권력의 부정과 비리를 감시하고, 불편한 진실을 파헤치려는 언론에 대해 여권이 "패가망신을 시키겠다"며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겠다고 하는 것은 언론의 자유에 재갈을 물리려는 발상으로 비칠 수 밖에 없다.
더구나 박 시장이 언급한 '악의적 보도' 와 '기사 왜곡'의 기준이 무엇인지도 애매모호하다. 법무부가 얼마 전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를 막겠다"면서 언론 취재를 제한하는 독소조항을 슬며시 넣은 것처럼, 권력의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 보도를 손보려는 의도라면 이것은 언론 장악이나 언론 통제와 다를 바가 없다.
또 박 시장이 언론개혁을 외치면서 정작 '가짜뉴스' 등으로 방송통신심위위원회에서 10여차례 징계를 받은 김어준 방송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은 '이중 잣대'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한국의 대표적인 시민운동가 출신의 행정가인 박 시장은 무엇보다 절제되고 신중한 어조와 실용적인 행보가 장점이다. 여권 지지세력을 품고 가기 위해 졸지에 '대언론 투사'로 이미지를 바꾼 것은 자신의 몸에 맞지 않은 옷을 걸쳐 입는 격이다.
박 시장이 바닥인 지지율을 끌어올리고 여권내 차기 주자로 자리매김하려면 진보와 보수라는 시대착
난마처럼 뒤얽힌 교통과 주거, 일자리 문제 등을 신속히 해결하고 서울시의 웅대한 미래와 비전을 제시해 시민들의 답답하고 꽉 막힌 가슴을 뚫어줄 때 대권으로 향하는 탄탄대로가 열릴 수 있다.
[박정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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