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국회 본회의 상정이 임박한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법안 저지 카드로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카드를 오늘(29일) 꺼내 들었습니다.
이날 본회의 상정 안건이자 또 다른 패스트트랙 법안인 유치원 3법 등 200여건 안건 전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것으로, 이는 '12월 10일 폐회까지 정기국회를 멈춰 세우겠다'는 뜻입니다.
당장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결정을 바라보는 국민 여론은 곱지 않습니다.
이날 본회의에서는 사립유치원 회계투명성 강화를 위한 유치원 3법은 물론, 어린이 교통안전 강화를 위한 '민식이법'(도로교통법 개정안), 데이터 경제 활성화를 위한 '데이터 3법' 중 일부 법안, 대체복무제 관련 법안 등 주요 민생·경제 법안이 처리될 예정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신청으로 줄줄이 무산됐습니다. 사실상 한국당의 '정기국회 마비전략'으로 당장 실생활에 시급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한없이 미뤄진 셈입니다.
나경원 원내대표는 이날 긴급 기자회견 도중 '유치원 3법을 볼모로 삼았다', '민생법안을 처리 못해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 아닌가'라는 기자들의 지적에 대답하지 않은 채 자리를 떴습니다.
한국당 내에서도 이 같은 비판 여론을 의식해 민생법안으로 분류되는 유치원 3법을 시작으로 필리버스터에 나서는 데 대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한 '정기국회 끝날 때까지 필리버스터' 방침을 고수할 경우 내년도 예산안의 법정시한(12월 2일) 내 처리도 어려워집니다. 한국당이 민생뿐 아니라 예산까지 발목을 잡는 모양새입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선 한국당이 왜 이날부터 필리버스터를 가동했는지를 놓고 해석이 분분합니다.
당초 한국당이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이 상정되는 날부터 필리버스터를 시작할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이들 법안은 내달 3일 이후 상정이 예고된 상태입니다.
우선 황교안 대표의 단식으로 당내 강경 기류가 강해져 결국 '조기 필리버스터'를 택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여야 4당의 공조로 패스트트랙 법안을 처리한다면 수적 열세인 한국당으로서는 이를 막아낼 방법이 없는 상황에서 패스트트랙 법안 상정을 원천봉쇄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는 것입니다.
당 관계자는 "12월 3일 패스트트랙 법안의 상정 자체를 못 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국회의장이 예상하지 못했을 때 필리버스터를 시작해야 했다"며 "토론이 종결되지 않으면 국회의장이 패스트트랙 안건을 상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날 본회의부터 12월 10일 정기국회 종료일까지 필리버스터를 계속 이어간다면,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법안을 최소한 정기국회 회기 중에는 상정할 수 없다는 계산이 당내에서 힘을 받았다는 분석입니다.
실제로 한국당이 밝힌 대로 전체 의원 108명 중 100명이 법안 한 건을 기준으로 1인당 4시간 이상씩 필리버스터에 들어간다고 계산하면 총 400여 시간이 나옵니다.
이날 본회의 시작 시점부터 정기국회 폐회(12월 10일)까지 270여시간 남은 점을 고려하면 필리버스터만으로 이번 정기국회에서 선거법 개정안과 공수처 설치법안 상정을 막을 수 있다는 계산입니다.
박맹우 사무총장은 통화에서 "1인당 4시간씩 필리버스터를 하면서 상황에 따라선 이보다 오래 할 수도 있다.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지속할 것"이라며 "패스트트랙 법안이 상정되면 안 되기 때문에 고안해 낸 묘수라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지난 26일 바른미래당 비당권파인 '변화와 행동을 위한 비상행동'(변혁) 측이 선거법 개정안이 본회의에 상정되면 필리버스터 등으로 막겠다고 밝힌 것도 영향을 미쳤으리란 관측이 나왔습니다.
정치권에선 한국당과 변혁 등 보수 야권이 필리버스터 공조에 들어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습니다.
당 일각에선 유재수 전 부산시 부시장 등에 대한 검찰 수사 결과를 지켜보기 위해 '시간 끌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습니다.
검찰의 유 전 부시장 수사가 가시적인 결과물을 내놓을수록 공수처 설치를 반대해온 한국당의 대국민 여론전이 힘을 받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당은 그동안 공수처 반
필리버스터 '1번 주자'로 나설 예정인 주호영 의원은 통화에서 "국회선진화법을 여당이 악용한 게 처음부터 문제였다"며 "우리 당은 법안에서 법을 지키며 패스트트랙을 막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MBN 온라인뉴스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