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용산 미군기지 일부가 우리 정부에 처음으로 반환된다. 지난 1882년 임오군란 직후 청나라군이 주둔하기 시작한 이후 138년만에 우리품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정부는 11일 미국과 제 201차 주한미군지위협정(SOFA) 합동위원회를 열고 용산을 비롯한 12개 미군기지를 반환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용산 기지와 함께 서울 지역의 극동공병단, 캠프킴 서빙고 부지, 경기도 하남의 성남골프장 부지 등 12개 미군기지를 반환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용산 기지의 반환은 소프트볼경기장 등 일부만 우선 진행될 예정이다. 정부관계자는 "용산 기지는 미군이 사용 중인 대규모 기지로, 전체 기지 폐쇄 이후 반환을 추진할 경우 시간이 많이 걸릴 수 있어 기지 내 구역별 상황과 여건에 따라 순차적으로 반환받기로 미국 측과 협의했다"며 "스포츠필드와 소프트볼경기장 부지를 우선 반환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용산에 외국 군대가 주둔한 것은 1882년부터다. 임오군란 때 청나라군이 용산기지 북부(현 캠프 코이너)에 지휘소를 세웠다. 이후 청일전쟁 발발 뒤인 1894년 일본군 8000여명이 상륙해 용산을 조선 진출의 전초 기지로 활용하기 시작했다. 일제의 한반도 식민지화가 진행되던 1889~1918년에는 용산에 일본 대륙 진출의 발판인 철도가 건설되고 일제 군사 기지(사령부)가 구축됐다. 이후 1945년까지 용산은 대륙 침략을 위한 일제의 동원 기지 구실을 했다. 1938년부터는 강제 동원되는 조선 청년의 입영 장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1945년 광복 뒤에는 용산에 미군이 주둔하기 시작했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후 한국군이 1년여간 용산에 주둔하긴했지만 1950년 6·25전쟁 발발로 용산에 다시 미군이 들어왔다. 전쟁 기간 동안 미군이 용산 기지 재건을 시도하자 1952년 정부가 용산을 미군에 공여했고, 정전협정 직후인 1953년 9월 미 8군사령부가 용산으로 이전했다.
같은 해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로 미군 주둔의 법적 근거가 마련되면서 일본 도쿄에 있던 유엔군사령부가 1957년 용산으로 옮겨왔고, 그 해 주한미군사령부도 창설돼 용산에 자리잡았다. 한반도 주변 강국이 각각 130년 이상 주둔해 오던 용
정부 관계자는 "미측의 부대이동계획, 지방자치단체의 지역개발계획, 미측과 협의 진행상황 등을 고려해 용산기지를 포함한 나머지 반환 대상 기지들도 최대한 조속히 국민 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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