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씨가 '통렬하게' 사과를 했다. 조금이라도 호감이 생길법 하건만 그렇지는 않다. 그처럼 말하고 그같은 방식으로 적대감을 드러내고 그런 표정을 짓고, 특히 그렇게 웃는 남자를 나는 도무지 좋아할 수가 없다. 매너가 남자를 만든다. 그가 사과를 100번 해도 유시민이 나오는 방송 채널에 2초 이상 머물 일은 앞으로도 없다.
육십 넘은 남자가 변하는 걸 본 일이 있는가. 나는 없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유시민은 왜 사과했을까. 검찰이 두려워서? 정상 참작을 바라고? 그런 계산이라면 법률적으로 조율된 사과문을 쓰는 것으로 족하다. 그런데 유시민의 사과문은 지난 삶을 채찍찔하는 '참회록'에 가깝다.
대선 도전을 염두한게 아닌가 하는 해석이 있다. 지금 여권엔 친문 후보가 한명도 없다. 유시민 출전을 열망하는 팬덤이 있다. 대선에서 이기려면 35% 안팎의 고정지지층에 더해 중도 확장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유시민은 정상인이다'는 인식이 파종되어야 한다. 사과문은 유시민의 편벽된 품성을 혐오하는 중도층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효과가 있다. 대중은 쉽게 감동하고 사실관계를 따지는데 약하다. 유시민은 그런 대중 특성을 이용하는 글쓰기를 평생 해온 사람이다.
그러나 너무 리스크가 크다. 유시민은 일반 대중외에 이해당사자들을 상대해야 한다. 유시민이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 거짓선동이 불법사찰 허위주장 한건이겠나. 하나를 인정하는 순간 과거가 통째 공습해온다. 이미 방공망은 해체되었다. 여러장의 사과문이 필요할 것이고 그러다보면 대권주자 대신 '실패한 어용지식인'으로 끝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모 아니면 도.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모험가라면 한번 해볼만한 시도다. 유시민은 모험가일까.
그의 사과문을 읽다보면 '이 분이 반성문 쓰는 재주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잘 쓴 반성문은 무엇인가. 상대가 기대하는 것보다 한 두 눈금 반성 수위를 높임으로써 '다시 써'라는 소리가 안나오게 하는 반성문이다. 유시민은 41년 전에도 그런 반성문을 쓴 적이 있다. 심재철 전 의원은 "1980년 계엄사령부 합동수사본부에 연행됐을 때 유시민이 쓴 자필진술서는 나를 비롯해 민주화 인사 77명의 목을 겨누는 칼이 됐다"고 말했다. 그렇게까지 상세하게 진술할 필요가 있었느냐고 심 전 의원은 물었다.
세상에서 제일 쓰기 어려운 글이 반성문이다. 자기부정이 괴롭고 그 와중에 뭔가 숨기기는 더 괴롭고 거짓말을 해야 한다면 양심의 가책이 더해진다. 이때 어떤 이들은 정공법을 택한다. 이것저것 안 따지고 탁 털어버리는 것이다. 그러면 상대는 만족하고 마음은 편안해진다. '사람이 살다보면 한두번 실수도 할 수 있지. 나는 그래도 사과하자나. 쿨하자나.' 그리고 싹 잊어버린다. 과오도, 부채의식도 없다. 삶의 완결성, 일관성에 집착하는 멘탈리티로는 어려운 일이다.
유시민 사과문에 대한 내 한줄평은 이렇다. '어렵게 해야 할 말을 참 쉽게도 썼다.' 그 사과의 무게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일이 유씨 남은 인생에 큰 과제가 될 것이다. 나는 사과문에 나오는 이 한 문장을 오래오래 기억하고자 한다. "우리 모두는 어떤 경우에도 사실을 바탕으로 의견을 형성해야 합니다. 분명한 사실의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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