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번의 죽을 고비를 넘기며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
섬 소년에서 민주화 투사가 되기까지 김 전 대통령의 목숨을 건 정치 역정을 조익신 기자가 짚어 봤습니다.
【 기자 】
목포에서 뱃길로 150리 떨어진 하의도에서 태어난 김대중 전 대통령.
드넓은 바다를 보며, 청운의 꿈을 키운 소년 김대중은 해운회사와 목포신문사를 운영하는 건실한 청년 실업가로 성장합니다.
사업에 성공한 김 전 대통령은 54년, 무소속으로 목포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며 정치인으로 첫발을 내딛습니다.
이후 두 차례 선거에서 연달아 고배를 마신 뒤, 63년 11월, 강원도 인제 재보선에서 승리하며 국회의원 배지를 답니다.
'40대 기수론'을 내건 김 전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을 누르고 제1야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면서 비로소 전국적인 인물로 부상합니다.
▶ 인터뷰 : 김대중 / 전 대통령
- "이 당을 더한층 밝게 하고, 발전의 길로 이끌고…"
이어 치러진 71년 대선에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90만 표 차이로 고배를 마신 김 전 대통령.
당시 공공연하게 벌어진 선거 부정을 빗대어 "김대중은 선거에서 이기고 투표에서 졌다"는 말이 회자되기도 했습니다.
「71년 5월 24일, 의문의 교통사고」
대선 한 달 뒤, 연이어 치러진 총선 지원 유세를 다니던 김 전 대통령은 목포-광주 간 국도에서 의문의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사고 후유증으로 다리를 심하게 다친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지팡이를 이때부터 짚게 됩니다.
교통사고 치료를 위해 일본에 머물던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이 예언했던, 조국의 서슬 퍼런 유신선포 소식을 듣습니다.
「73년 8월 8일, 김대중 납치 사건」
해외에서 민주화 운동에 열심이던 김 전 대통령은 괴한들에게 납치돼 또다시 죽음의 문턱을 넘습니다.
▶ 인터뷰 : 김대중 / 전 대통령
- "폭력으로 제압을 당하고 마취제를 써서 의식을 잃게 만들어가지고 자동차에 강제로 실려서…"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김 전 대통령은 불법 가택 연금과 투옥 생활을 반복하다 궁정동의 총성으로 이른바 서울의 봄을 맞게 됩니다.
「80년 9월 17일, 내란음모 사건 '사형선고'
」
따뜻한 봄날도 잠시, 김 전 대통령은 신군부에 의해 '김대중 내란 음모 사건'에 내몰려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세계 각국의 양심적 지식인들의 구명으로 형을 감형받은 김 전 대통령은 82년, 미국 망명길에 오릅니다.
'행동하는 양심'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위해 싸우다 3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던 김대중 전 대통령.
하지만, 세월이 준 병마는 끝내 이기지 못하고 결국 소천했습니다.
MBN뉴스 조익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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