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가 4일 쓴 페이스북 글 제목이 눈길을 끈다.
'같은 경제학자라는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와 다선 국회의원중 누구를 믿을까요?'다.
이 지사가 글에서 언급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는 베너지 미국 MIT 교수, 경제학을 공부한 다선 국회의원은 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이다.
유 의원이 이 지사의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전국민 기본소득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자 베너지 교수를 매개체로 역 공격에 나선 것이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베너지 교수와 사기성 포퓰리즘이라는 유승민 전 의원 모두 경제학자라는데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까요?"라면서 "베너지교수는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세계적 석학이고, 유승민 전 의원님은 뭘 하셨는지는 몰라도 아주 오래 국민의 선택을 받으신 다선 중진 국회의원이심을 판단에 참고하겠다"고 했다.
한마디로 두 인사가 같은 경제학을 공부했지만 노벨경제학상까지 받은 경제학 교수의 말이 맞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이 지사가 언급한 아브히지트 베너지 교수는 미국 MIT대 교수로 2019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았다. 지난 4월 28일 경기도 초청을 받아 '2021 대한민국 기본소득박람회' 기조연설자로 연단에 선 인물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잠룡들이 상대의 주요 아젠더를 놓고 날선 공방을 벌이는 과정에서 이 지사는 이런 글을 썼다.
상대의 공격을 받고 방어와 재공격을 해야하는 사정이 있으나 이날 이 지사의 대응은 원초적이어서 실책에 가깝다는 비판이 나온다.
경제학을 공부한 두 인사를 놓고 수상 경력을 언급하며 급을 나누는 전 근대적 사고방식, 권위를 가장 큰 무기로 상대를 제압하려는 유치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지사의 페북 글에 우려가 적지 않다.
'도지사님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 아세요? 제가 요즘 대학에서 논리학 개론을 듣고 있는데요. 님이 말씀하시는게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에 딱 부합해서요. 이게 맞는건지 여쭤보고 싶어요.'
'우려스럽습니다. 일반적으로 노벨상 수상자에게 사회가 부여하는 권위를 인정한다 손 치더라도 그 권위에 기대어 다른 주장을 비판하거나, 배척하는 듯한 말씀은 쉽게 수긍이 어렵습니다. 야당이 동일 논리로 주장해도 수긍해야할까요? 논리보다 권위에 기대어 자기 주장을 펼치는 자세로 보일수 있습니다. 포스팅에 신중해 주시면 덜 불안하고, 덜 불편할 듯합니다.'
'이재명님의 선동은 한줄의 문장이면 되지만, 그 선동이 거짓임을 밝히기 위해 많은 분들이 책까지 읽어가며 잘려진 앞뒤문장을 이어붙여드리는데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다는 점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배너지, 뒤플교수가 이 사실을 알게될까 우려스럽습니다. 부끄럽네요.'
국민의힘 윤희숙 "아전인수 정도껏 하라"
최근 이 지사의 경제정책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이재명 저격수'로 불리는 국민의힘 윤희숙 의원도 비판 대열에 합류했다.
윤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 지사께서 자신이 주장하는 전 국민 기본소득을 노벨상 수상자들도 제안했다며 자랑하셨다. 심지어 노벨상 권위에 기대 논쟁 상대방을 깎아내리기까지 한다. 어처구니가 없다. 존경받는 개발 경제학자 베너지-두플로 교수는 선진국의 기본소득에 대해 이재명 지사와 정반대 입장이다"면서 공개 저격했다.
윤 의원은 "이 지사에 따르면, 2019년 노벨상 수상자인 베너지-두플로 교수 부부가 '모든 국민들에게 연간 백만원 정도의 소액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제시했다고 한다"면서 "저자들의 글을 직접 보시고 판단해보시기 바란다"고 관련 저서(힘든시대를 위한 좋은 경제학, 생각의힘, 2020)의 부분(503~516 페이지)을 공개했다.
윤 의원이 공개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부유한 나라와 달리 가난한 나라는 보편기본소득이 유용할 수 있다. 개발도상국은 복잡한 프로그램을 운용할 행정역량이 부족하고 농촌기반 사회라 소득파악도 어렵기 때문이다. 인도의 경우 상위 25%를 제외한 75% 인구에게 매년 7620 루피(430달러, ppp) 정도를 지급하면 절대 빈곤 대부분을 없앨 수 있다. 기존의 주요 복지프로그램을 모두 대체해 재원을 충당하고, 상위 25%를 제외하기 위해서는 지급방식을 번거롭게 만들어 여유있는 사람이 스스로 지원금을 타가지 않도록 설계할 수 있다. 반면, (미국과 같은) 선진국은 돈이 필요해서만이 아니라, 일 자체가 목적의식, 소속감, 성취감, 존엄성, 자아계발 등 삶의 의미를 가꾸는 주축이다. 선진국 사회가 현재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편기본소득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일자리를 만들고 지키는 것, 근로자의 이동을 돕는 것이 핵심이다.'
윤 의
[지홍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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