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3·1절이 되면 조명받는 제암·고주리 학살 사건, 그만큼 잔혹했고, 피해도 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금 그곳에선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라는 후손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 사연을 갈태웅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기자 】
1919년, 일제에 무려 4차례나 보복을 당해 잿더미로 변했던 경기도 화성시 수촌리.
▶ 스탠딩 : 갈태웅 / 기자
- "3·1 만세운동 당시 일제는 이곳 수촌리에도 불을 질렀습니다. 42가구 중 38가구가 불에 탔고, 이 수촌교회도 전소됐습니다."
당연히 지역 만세운동은 더욱 거세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지역민들에게 일제는 내란과 살인·방화 등의 중죄를 뒤집어씌웠습니다.
반면, 일제는 자신들 범죄에 대해선 관대했습니다.
제암·고주리 주민들을 무참히 학살한 아리타 중위에게 뻔뻔하게도 무죄를 선고했을 정도였습니다.
이런 배경으로 제암·고주리 학살 사건의 초점은 일제 만행과 피해 사례에 맞춰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때문에 제암·고주리 학살 사건을 재조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 인터뷰 : 박환 / 수원대 사학과 교수
- "'진짜 제암리 학살 사건이 왜 있었는지'라는 동기라든가 계기라든가 이런 부분에 대해선 지금까지 별로 주목하지 못했다."
순사 2명을 처단해야 했을 정도로 극심했던 수탈, 때문에 무려 한 달 보름 이상 계속됐던 만세운동 과정도 짚어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후손들 다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용서조차 안 될 반인륜적 만행이지만, 냉철한 시각으로 당시를 규명하겠다는 것입니다.
▶ 인터뷰 : 안용웅 / 제암리 사건 안경순·안상용 열사 후손
- "다만, 돌아가신 분들이 왜 돌아가셨는지, 그 정신이 무엇이었는지 이걸 못 알아주니까!"
매년 3·1절마다 쏟아지는 후손들의 눈물, 하지만 일본은 오늘도 사과는커녕 부끄럽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현장음))
"그 뜻이…."
MBN뉴스 갈태웅입니다. [ tukal@m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