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전 우리의 재판장은 어땠을까요?
땅을 돌려달라며 백성이 임금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는 일도 있었다고 합니다.
일제강점기, 씁쓸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영규 기자가 보도합니다.
일제치하인 1914년.
명성왕후의 묘인 홍릉이 확대되면서 땅을 빼앗겼다는 정 모 씨가 소송을 냈습니다.
상대는 창덕궁 이왕.
바로 순종입니다.
나라를 잃고 대한제국의 황제에서 소송 대상으로 전락한 초라한 왕의 처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일본인과의 소송에서조차 이긴 을사오적 이완용도 눈에 띕니다.
80만평에 달하는 전라도 부안군 일대 땅을 둘러싼 소송에서 이완용은 1,2심을 모두 뒤엎고 승소했습니다.
당시 그의 위세를 짐작케하는 대목입니다.
이처럼 100년전 우리 사회의 모습을 가늠할 수 있는 판결문이 이번에 한글로 번역돼 나왔습니다.
현재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조선총독부 고등법원의 판결문으로, 1912년부터 1914년 사이 112건의 결과를 담고 있습니다.
인터뷰 : 유원규 법원도서관장
-"재판을 통해 선조들의 모습과 시대상을 살펴볼 수 있으며, 법제사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중장기 사업으로 고등법원 판결문 국역 작업을 벌이고 있는 법원 도서관은 이미 지난해 제1편 형사편을 출간한 바 있습니다.
법원 도서관은 앞으로도 꾸준히 번역작업을 이어나가 판결문이 다양한 1차 연구자료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입니다.
mbn뉴스 이영규입니다.
< Copyright ⓒ mb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