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입양 복지의 산 역사, 홀트아동복지회의 58년 기록이 국가기록원에 기증됐습니다.
이국 땅에서 평생을 장애 어린이와 고아 돌보기에 헌신한 홀트 여사는 이제 영락없는 한국의 할머니가 됐습니다.
갈태웅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기자 】
((현장음))
"1955년 10월 미국 포틀랜드 국제공항에서 오리건 농부의 아내와 친구, 이웃들은 귀국하는 그를 반겼습니다. 한국에서 돌아온 해리 홀트는 8명의 입양아를 직접 데리고 왔습니다."
낯선 외국 땅, 외국인의 품에서 어리둥절해하는 아기들.
일부 어린이는 울음마저 터뜨립니다.
6·25 전쟁 이후 결연히 한국 고아들을 위해 일생을 바치기로 한 해리 홀트의 첫 삽이었습니다.
이후 서울 임시 시설을 거쳐 1961년 지금의 경기도 일산에 장애 어린이와 고아를 위한 복지타운을 세웠습니다.
((현장음))
"시냇물은 졸졸졸졸, 고기들은 왔다갔다, 버들가지 한들한들, 꾀꼬리는 꾀꼴꾀꼴~"
이처럼 한국 현대사의 아픈 기억, 해외 입양의 반세기를 담은 홀트 재단의 기록물이 국가기록원에 기증됐습니다.
해리 홀트의 딸로, 스무 살 때부터 한국에서 어려운 아이들을 돌봐온 말리 홀트 여사 역시 첫 한국땅의 광경을 잊지 못했습니다.
▶ 인터뷰 : 말리 홀트 / 홀트아동복지회 이사장
- "빼빼 말라서 부스럼, 머리 부스럼이 많고, 너무너무 고생한 아기들…."
78살에도 장애 어린이와 고아 사랑을 잊지 않는 홀트 여사, 천생 그는 이 땅의 대모였습니다.
"성장해서 들어오면, 자기 부모, 자기 부인, 자기 자녀와 같이 오니까 정말 고마운 일입니다. 허허허!"
MBN뉴스 갈태웅입니다. [ tukal@mk.co.kr ]
영상취재 : 김병문 기자
영상편집 : 김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