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후 몰려드는 졸음에는 계절이 따로 없다. 성큼 다가온 쌀쌀한 겨울 날씨에 뜨끈한 점심을 먹고 나면 눈꺼풀이 스르르 내려오기 마련이다. 씨름 선수도 들지 못 하는 게 졸음에 겨운 눈꺼풀이라는데 낮잠을 피하는 직장인 '선수'들에게 졸음 쫓는 방법과 짧고 달게 자는 방법을 들어봤다.
▲"신입 때 좌변기 안고 자던 건 옛말이죠"
대기업 안내데스크에서 일하는 A씨(31세·여)에게 졸음은 '진상 방문객'보다 더한 불청객이다. 이른 아침부터 오전 내내 방문객 응대와 VIP 접대를 한 뒤 늦은 점심을 먹으면 일반 직장인들보다 더한 졸음이 쏟아진다는 게 A씨의 주장이다. 신입 시절에는 긴장탓에 졸린 지도 잘 몰랐지만 이제 3년차에 접어든 A씨는 서서도 눈치껏 조는 '베테랑'이 됐다.
A씨는 "신입교육 때 너무 잠이 와 화장실에서 좌변기 커버를 내리고 좌변기를 감싸안은 채 그대로 잠들었다가 교육이 마칠 때서야 눈을 떠 혼쭐이 난 적이 있다"며 "그 이후 '졸면 안 되겠다, 졸아도 들키면 안 되겠다' 싶어 나만의 방법을 연구했다"고 말했다.
A씨가 고안한 방법은 일단 높은 하이힐에서 내려오는 것. 안내데스크 아래 보이지 않게 신문을 깐 뒤 구두에서 일단 내려온다. 발의 피로감이 훨씬 줄어드는데다 구두를 벗은 모습이 잘 보이지 않는다. 구두가 발 앞에 있으니 외부지원을 나갈 때면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금방 구두를 신기도 편하다. 게다가 하이힐을 신고 졸 경우 쉽게 앞으로 고꾸라지는 것도 방지할 수도 있다. 허리춤으로 손깍지를 끼면 무게 중심이 뒤로 향해 졸아도 몸의 움직임이 훨씬 줄어든다.
A씨는 "안내직원들은 몸매를 위해서기도 하지만 졸음을 쫓기 위해서도 가볍게 점심을 먹고 늘상 스트레칭을 한다"며 "VIP 손님 응대시 피곤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실례이기 때문에 늘 신경쓴다"고 말했다.
▲"가득 쌓아논 책과 파일에 조는 모습 숨겨요"
증권가 애널리스트로 활동하는 B씨(37세, 남)의 책상에는 각종 보고서와 책이 잔뜩 쌓여있다. 바쁜 업무 탓이긴 하지만 졸음이 쏟아질 때도 톡톡히 그 역할을 한다는 게 B씨의 설명이다.
B씨는 "애널리스트 자리는 대부분 분리가 잘 돼있고 턱이 높아 사생활 보호가 잘 돼는 편"이라며 "하지만 내 자리는 통로 쪽이어서 통로 쪽에 각종 보고서와 책을 잔뜩 쌓아두고 머리가 보이지 않게 그 속으로 파고든다"고 말했다.
입사 초반부터 모은 파일과 책의 양은 B씨의 키를 훌쩍 넘었다. 신입 때는 자신과 상관없는 분야의 레포트까지 모아 자신의 공간을 만드는 데 활용했다. 이를 본 상사가 속을 아는 지 모르는 지 "이것저것 일을 참 열심히 해"라고 말해 찔리기도 했다.
B씨는 "눈물펜 등을 눈 밑에 발라보기도 하고 탕비실에서 윗 몸일으키기도 해봤지만 일단 졸리기 시작하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며 "졸리면 일단 조금이라도 자고 보자는 생각에 최대한 서류 쪽으로 몸을 숨긴 뒤 상사의 눈을 피해 잔다"고 전했다.
▲"교육 중 잠들어버린 나, 화장실 칸에 다리가 삐져나와"
승무원 C씨(26세, 여)는 졸음에 대한 끔찍한 경험이 있지만 여전히 잠에서 쉽게 헤어나오지 못한다. C씨는 "기본교육 때 화장실 마른 바닥에 휴지를 깔고 그대로 잠들어 버렸다"며 "옷을 버리지 않으려 한 일이었는데 눈을 떠보니 다리에 휴지가 감겨있고 화장실 칸 밖으로 다리가 삐져나와 창피를 당했다"고 말했다.
C씨는 이후 졸음을 쫓는 껌이나 얼음을 이용한다. 일단 잠이 몰려오면 얼음을 입에 물어 잠을 쫓는다. 찬물을 입에 머금고 있으면 입가가 긴장돼 쉽게 잠이 들지 않는다.
C씨는 "이용객의 편의를 위해 우리는 졸음과 싸우는 직업"이라며 "비행시간은 대부분 쪽잠이기 때문에 잠이 모자라지만 안전을 생각하면 잠이 온다고 눈을 붙일 수는 없는 일"이라고 전했다.
서재현 마취과의원 통증클리닉 원장은 "졸음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내 몸이 수면 보충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라며 "커피 등을 통해 억지로 잠을 쫓아도 결국 피로로 몸에 잠이
이어 "스트레스를 받으면 같은 일을 해도 몸이 에너지를 더 쓰게 된다"며 "기본적으로 낮에는 즐겁게 일하고 저녁에는 업무를 깨끗이 잊고 쉽게 잠이 드는 게 피로를 막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배윤경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