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배자들이 조계사나 명동성당으로 몸을 숨긴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죠.
종교시설인 만큼 공권력 행사가 쉽지 않기 때문인데요.
그 역사를 이성식 기자가 정리해봤습니다.
【 기자 】
민주화 바람이 거세던 지난 1980년대.
명동성당은 민주화 운동의 '마지막 보루'였습니다.
천주교는 수배자들의 은신을 암묵적으로 인정했고, 공권력 행사는 자제됐습니다.
"빗발치는 국민의 민주화 요구에 따라 대통령 직선제수용 등 시국 수습 방안이…."
이런 금기는 2000년대 들어 깨졌습니다.
잇단 농성에 신자들의 불편이 가중되자 성당 측은 퇴거를 요구하고 경찰에 시설보호를 요청했습니다.
그 뒤 조계사가 '제2의 명동성당'으로 불리며 또 다른 피신처 역할을 하게 됩니다.
지난 2008년 7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총파업을 벌이던 농성단이 조계사로 피신해 120일 넘게 버텼습니다.
▶ 인터뷰 : 박원석 /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2008년 7월)
- "요즘 저희가 가장 답답한 것이 체표영장이 내린 이후로 촛불 현장에 시민들과 참석을 못하는 것이…."
당시 경찰은 총무원장인 지관스님의 차량을 검문해 종교계의 반발을 사기도 했습니다.
▶ 인터뷰 : 어청수 / 경찰청장 (지난 2008년 9월)
- "큰 스님들께 사과드리러 왔습니다."
농성단은 경찰을 따돌리고 조계사를 빠져나가는 데까지 성공했습니다.
이후에도 일부 노조 간부들이 피신해 왔고 이번에 철도노조 박태만 부위원장까지 은신하면서조계사로 국민의 시선이 쏠리고 있습니다.
MBN뉴스 이성식입니다. [ mods@mbn.co.kr ]
영상편집 : 원동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