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마의 해가 밝았습니다. 지난해는 제게 매우 뜻깊은…"
지난해 입사한 '1년차 새내기' A씨(29, 남)는 15분째 스마트폰을 놓지 못하고 있다. 지웠다 썼다를 반복할 때마다 이마에 생기는 주름이 그 어떤 보고서를 쓸 때보다 깊다. A씨가 이렇게 고민하는 이유는 새해를 맞아 상사에게 새해인사 문자를 보내기 위해서다. 지난 1일 오전 9시에 맞춰 전체문자를 돌렸지만 구정을 그냥 넘기기에는 영 찝찝하다.
새해나 명절 등을 맞아 직장 상사에게 보내는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를 두고 직장인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남들 다하는 인사치레 어떻게 하면 인상깊이 남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서다.
◆"똑같은 문자, 센스없어 보이기 딱 좋아"
신입사원 A씨는 신정에 부장님을 비롯해 선배와 동기들에게 같은 내용의 전체문자를 새해문자로 돌렸다가 눈치를 봤다. 동기 중 한명이 선배들 이름을 하나하나 언급하며 조금씩 다른 내용으로 새해문자를 보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A씨는 "상대적으로 성의없어 보였을 것을 알기에 이번 구정문자는 더욱 신경이 쓰인다"며 "원래는 신정에 보냈으니까 구정은 그냥 넘어갈 생각이었지만 재도전하는 자세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A씨는 포털사이트에 '새해문자', '신년문자 추천', '새해 인사말 모음' 등을 검색하며 열심히다. 예약문자 사이트를 이용해 오전 9시에 맞춰 예약문자도 걸어놓을 계획이다. 전체문자의 경우 한 번에 보내면 되지만 이번의 경우 각각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미리 내용을 써두지 않으면 지체될 수 있다는 게 A씨의 설명이다.
◆"카톡 단체방, 대표님 새해인사에 순위 경쟁이"
의류업체에 다니는 B씨는 새해문자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명절이 되면 대표를 비롯해 임원과 직원들이 카카오톡 단체창에 한마디씩을 남기는데 이모티콘과 적당한 새해인사를 적절히 사용하면 되기 때문에 부담이 없다. 주말이며 공휴일이며 가릴 것 없이 시시때때로 울리는 카톡 단체방 알림에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이럴 때는 그 편리함이 새삼 고마울 정도다. B씨는 "각자에게 뭐라고 한 마디씩을 할 지 고민 안 해도 되는 게 얼마나 편리한 지 모른다"며 "다만 대표님이 신년인사를 보내셨을 때 답장이 순서대로 찍히기 때문에 '순위경쟁'이 불 붙는다는 게 단점"이라고 지적했다.
◆"평범하게 보냈다가 스팸취급…억울"
은행에 근무하는 C씨는 최근 타지점으로 파견을 나간 상사에게서 "왜 내게만 새해문자를 보내지 않았냐"는 질문을 받았다. 상사는 매년 신년인사를 건네던 C씨가 올해 파견인사가 난 뒤 자신에게 새해문자가 없었던 것에 상당히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결국 저녁 뒤 이어진 가벼운 술자리에서 이 얘기가 나왔고 C씨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C씨는 "분명 새해인사를 드리는 문자를 보냈다"며 "상사를 차별한다는 오해를 받고 그냥 넘길 수 없었다"고 말했다.
C씨는 억울함에 자체 수사(?)를 발동했고 결국 상사의 2G 휴대전화에서 스팸처리된 자신의 문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C씨는 "어떻게 해서 스팸 처리가 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다들 비슷한 내용을 여럿에게 보내니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사탕 하나와 건네니 효과 만점"
지난해 부장으로 승진한 D씨는 지난 추석 직원들의 책상에 사탕 한 개씩과 명절인사를 담은 간단한 메모를 남겼다. 편의점에 들렀다 보인 사탕 몇봉지를 구입해 기획한 작은 이벤트였지만 반응은 뜨거웠다. D씨는 "작은 사탕 하나였지만 직원들이 굉장히 좋아했다"며 "내 앞이어서 그랬을 지는 모르지만 상사에게 이런 걸 처음 받아봤다고 하니 내가 그동안 너무 소홀했다 싶어 괜스레 미안해졌다"고 말했다.
D씨는 이번 설날에도 작은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 직원수에 맞춰 도너츠 가게에 주문도 마쳤다. D씨는 "명절을 앞두고 작은 재미지만 긴장도 된다"며 "이번엔 메모 문구도 성의있게 보이고 싶어 이것저것 찾아봤는데 아직까지 마땅한 게 없어 새해문자를 위
정화 신경정신외과 전문의는 "직장인에게 설날은 한해동안 만난 인연을 되돌아보게 되는 시기"라며 "남다른 문자를 보내야 한다는 강박은 좋지 않기 때문에 안부를 묻는다는 정도로 편하게 접근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매경닷컴 배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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