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턴 경험은 치열한 취업 시장에서 기본 '스펙'으로 꼽히며 취업준비생들의 등용문(登龍門)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우리 취준생들이 거쳐야하는 등용의 과정은 배움과 성장이 아닌 불합리와 희생을 의미해 문제를 낳고 있다.
◆ 한달에 10만원 받고 강아지 배설물까지…
서양미술학과를 졸업한 A씨는 순수 미술가가 아닌 예술작품을 수집하고 전시회를 계획하는 학예사가 되고자 했다. 하지만 학예사 자격을 갖추기 위해선 관련 학위와 함께 경력인정대상 기관에서 오랫동안 실무경력을 쌓아야 하는 부담이 있었다.
"학예사가 되는 길이 힘들다보니까 우선 무슨 일인지 경험부터 해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한 사립미술관 인턴 채용에 지원을 했죠. 합격 통지를 받았을 땐 그렇게 기뻤는데… 출근 첫날 저한테 시킨 일이 뭔지 아세요? 관장님 댁 세금 납부였어요."
상사의 뒤치다꺼리로 시작한 업무는 갈수록 힘이 들었다. 미술관에서 키우는 강아지 배설물 치우기부터 쓰레기 정리까지. A씨는 인턴 업무에 대해 "미술과 관련된 일은 서류 정리조차 해본 적이 없다"며 "한달에 교통비 포함해서 10만원을 받으면서 배움은커녕 직원 취급도 받아보지 못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나 A씨는 학예사가 되기 위해서는 모두가 거치는 과정이라는 업계 분위기에 아무런 항의도 못하고 결국 계약 기간인 1년을 꽉 채웠다.
◆ "일은 정직원보다 더 많이 하는데, 회식 때는 왜 열외죠?"
한 사립대학 행정실에서 인턴 생활을 했던 B씨는 대학생들의 민원을 처리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는 인턴 생활에 대해 "등록금 납부기간이라 휴학, 복학 등 관련 업무가 너무 많았다"면서 "일을 줄 때마다 '우리 B씨, 이것 좀 부탁해'라고 하던 팀장님 목소리가 지금도 들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대학생들을 상대하는 업무가 다른 일보다는 수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진짜 힘들었던 이유는 인턴은 '직원'이면서 '직원'이 아니라는 동료들의 태도였다"고 설명했다.
B씨의 외로움과 서운함은 상사인 C씨가 출산휴가로 자리를 비우면서 합류한 D씨의 환영회에서 폭발했다. 근로학생이나 조교로 일하는 학생들도 참석한 회식자리에서 인턴직원인 B씨는 쏙 제외됐던 것. 평소 친하다고 생각했던 근로학생마저 B씨에겐 말 한마디 없이 퇴근하듯 도망쳐 회식자리에 합류했다.
"학교에서 직원들과 조교들에만 회식비를 할당하는 건 알고 있었어요. 그런데 근로학생들도 데려가면서 저만 빼놓고 가는 건 정말 황당하더라고요. 일할 때만 '우리 B씨'고 회식자리에서는 남이라는 소리잖아요."
◆ 인턴 직원 2명 중 1명은 프로그램에 불만족
인턴십 프로그램의 참가한 경험자 중 과반수는 A씨나 B씨처럼 인턴십 프로그램에 불만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잡코리아와 월간 인재경영이 인턴 직원 21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인턴십 프로그램 만족도 조사' 결과, 응답자의 51.9%는 '참여했던 인턴십 프로그램에 대체로 불만족한다'고 답변했다.
이유는 '체계적이지 못한 인턴 교육 프로그램'이 33.3%로 가장 많았고, '낮은 급여'라고 대답한 비율이 28.8%로 뒤를 이었다.
인턴제도에 대한 평가를 부탁하는 물음에는 29.0%가 '미리 실무 및 직장 경험을 할 수 있는 제도'라고 답했다. 또 '기업의 인턴 경험자 직원 채용에 도움이 된다'고 대답한 비율은 24.3%로 나타났다.
반면 '저렴한 인건비로 기업의 과다한 업무를 해소하는 비양심적 제도'라고 생각하는 비율은 16.4%, '대학생이 아닌 구직자들의 자리를 뺏어 취업난을 악화시킨다'는 의견도 6.5%에 달했다.
한 기업 인사 담당자는 "배우러 온 대학생들에게 정직원 만큼의 대우를 해주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라면서도 "상사 뒤치다꺼리같은 일을 시키는 것은 정말 불합리한 행태"
이어 "장기적으로 보면 회사의 인재가 될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교육 프로그램 등이 불만족스럽다면 충분히 고려해 수정,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며 "인턴제가 원래 취지에 맞게 정착될 수 있도록 사회적 관심이 필요한 시기"라고 강조했다.
[매경닷컴 이가희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