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모처럼 여성 팀원들만 같이 식사 합시다. 거래처나 중요한 약속 아니면 취소하고 조금 일찍 11시 40분쯤 나갑시다."
한 달에 한 번 그 날이 또 왔다. 월말쯤이면 팀장이 꼭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한다. 처음엔 맛있는 점심을 먹게 된다는 생각에 좋아했다. 하지만 몇 개월이 지나서야 팀장의 검은 속내를 알게 됐다.
오늘도 역시 주꾸미 정식이다. 벌써 세 달째 월말에 주꾸미 정식. 일인당 8000원에 싸지도 비싸지도 않은 식사다. '공짜라면 양잿물도 마신다'는데 사주는 음식이니 먹기는 하겠지만 같은 메뉴가 지겹기도 하고 호의를 베푸는 이유를 알고 나서는 먹고 싶지 않다.
팀에서 유일하게 속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같은 존재이자 같은 여자인 A과장이 넌지시 알려줬다. 팀장이 매달 한 번씩 여직원들에게 밥을 사는 이유를.
회사에서 지급한 법인카드가 있는데 해당 카드를 사적으로 사용하거나 남직원들하고 거나하게 술 한 잔하고 한도를 다 소진한 뒤에 미안한 마음에 항상 여자 팀원들에게 밥을 산다는 것이다. 회사에는 분명 팀 회식비로 청구됐을 것이라는 것이 A과장의 귀띔이다.
그렇다면 법인카드를 사적으로 악용하는 경우가 많이 있을까.
취업포털 커리어가 직장인 754명을 대상으로 '법인카드 사용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 직장인의 15.8%가 "법인카드를 악용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법인카드 불법사용의 내용으로는 '법인카드 사용 후 마일리지 적립은 본인 것으로'(36.8%)가 가장 많았고, '회사업무를 가장해서 사적으로 사용한다'는 직장인도 29.2%에 달했다. 이어 '법인카드로 구입한 것을 개인적으로 사용한다'(22.2%), '금액이 큰 것을 나눠 결제한다'(10.4%)의 순이었다. 상품권 등으로 세탁해 현금화한다는 직장인도 0.9%에 달했다.
직장인들은 법인카드를 악용하다 회사에 발각될 시 어떻게 대응할까.
'징계 사항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가 35.3%를 차지했고, '실수였다는 것을 변명(증명)한다'(28.6%), '잡아뗀다'(26.1%), '무조건 잘못을 빈다'(8.4%), 회사를 그만두는 쪽으로 검토한다 1.7%였다.
법인카드 관련 에피소드는 또 있다.
입사 9년차인 B과장은 가벼운 지갑을 보니 한숨만 나온다.
회사에서 분명 지급한 법인카드가 있지만 부서장이 한 번도 사용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덕분에 회식을 하면 항상 갹출해서 저녁을 먹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술이 부족하다 싶은 팀 후배들이 B과장에게 한 마디 건넨다. "맥주라도 한 잔 하고 가죠"라고.
쪼잔하다는 이야기도 듣기 싫고 한참 열심히 일하는 후배들을 보니 안타깝기도 해 그들의 제안을 무시하기 쉽지 않다. B과장은 쓰린 속내를 감추고 팀원들을 데리고 맥주와 치킨을 또 쐈다. 갹출한 회식비에 맥주까지 오늘만 20만원을 지출해 한 달 용돈이 바닥을 보이고 있다.
한 번은 부서장에게 법인카드를 요청해봤다.
그랬더니 부서장은 "절약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위에서 다 보고 있어. 이게 다 고가에 반영되는거야. 애사심이 없구만"이라고 말했다.
현대카드가 지난해 1~12월 3만1000곳 법인 고객의 법인카드 결제내역을 분석한 결과 가장 사용 비중이 높았던 건 화물·운송 등 교통비(18%)였다. 이어 법인용 차량 유지비 등 자동차 관련 비용 결제가 15%로 뒤를 이었고 회식비, 식비 등 요식 관련 결제비중이 12%에 달했다.
요식에서 법인카드 결제비중은
[매경닷컴 최익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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