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수학능력시험 만점자가 대학 수시모집에서 불합격하는‘촌극’이 올해도 발생했다.
작년 만점자는 까다로운 전형의 벽을 넘지 못해 떨어졌다면 올해는 해당 대학 논술고사를 치르지 않아 일부러 떨어지는 쪽을 택했다. 수시를 포기하고 정시에 원하는 대학을 가겠다는 선택이지만 이로 인해 수시 경쟁률만 높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7일 교육계에 따르면 올해 수능 만점자 29명 중 한 명인 이 모군은 대학별 수시모집에서 모두 불합격해 오는 19일 시작되는 정시모집에 응시한다. 이군은 중앙대 의대에 지원했으나 지난달 23일 논술고사장에 나오지 않았다. 이군은 서울대 의예과를 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5일 최종 합격자를 발표한 중앙대 측은 “이군을 포함해 4명의 만점자가 중앙대 수시모집에 지원했으나 모두 논술고사를 치르지 않아 불합격 처리됐다”고 이날 밝혔다.
중앙대 수시는 4개 영역 중 3개 과목이 1등급이라는 수능 최저 요건과 함께 논술(반영 비율 60%), 학교생활기록부(40%)로 신입생을 뽑는다. 이 대학 자연계 논술고사 경쟁률은 무려 56대1이었지만 실제 응시율은 44%에 불과했다. 작년 응시율(49.7%)보다 떨어져 경쟁률 거품이 유독 심해졌다. 이군처럼 ‘수시 포기자’들이 속출했다는 뜻이다. 이 같은 현상은 서울 지역 주요 상위권 대학들도 마찬가지다.
대학 수시는 수능 의존도를 낮추고 다양한 인재를 선발한다는 취지로 도입됐지만 일정이 너무 빨라 수시 포기자들을 양산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매년 9월 시작되는 수시 일정상 수험생들은 11월 치러지는 수능 시험은 물론 9월 모의고사 성적 결과도 모른 채 응시해야 한다. 임성호 종로학원하늘교육 대표는 “수능 점수가 생각보다 좋게 나오면 미리 넣어둔 수시를 포기하기 위해 논술고사를 일부러 치르지 않게 된다”며 “자신의 성적을 확인하지 못한 채 치르는 수시 일정에 허점이 있다”고 말했다.
수능 만점자가 입시에 떨어질 정도로 대학 입시 전형이 너무 복잡하고 까다롭다는 지적도 있다.
작년 자연계 유일한 수능 만점자 전봉열 군은 고려대 의과대학 수시모집에서 낙방한 후 서울대 의예과에 지원했다가 또다시 떨어졌다. 서울대 의예과는 당시 정시모집에서 수능점수 60%, 구술면접 30%, 학생부 10%를 반영했는데 사실상 면접이 전군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또 수시가 다른 전형 요소 위주의 선발을 하고 있다면 수능최저학력기준을 좀 더 낮춰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올해 ‘물수능’ 여파로
이영덕 대성학력개발연구소장은 “올해도 일부 대학들은 수시 수능최저학력기준이 상당히 높기 때문에 수능 최저를 충족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오는 19일 시작되는 올해 정시모집은 어느 때보다 경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일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