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이틀 전 영종대교 추돌 사고가 터지자 많은 국민들은 또다시 악재가 터졌구나 싶어 가슴 철렁했을 겁니다.
대한민국에선 지난해부터 거의 매달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MBN이 진단한 결과, 국민이 느끼는 재난 공포에 비해 정부의 대책은 낙제점에 가까웠습니다.
박유영, 박준우 기자가 심층 취재했습니다.
【 기자 】
공포.
지난해부터 일상을 덮은 단어입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영종대교 연쇄 추돌은 물론, 1년 전으로 돌아가 2월 경주 마우나리조트 붕괴와 4월 세월호 침몰, 10월 판교 환풍구 붕괴 사고까지 거의 매달 대형 사고가 터진 겁니다.
그렇다면 국민이 실제로 느끼는 불안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요.
MBN이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아 재난 공포에 대해 설문 조사를 해봤습니다.
결과는 예상보다 훨씬 나빴습니다.
국민의 절반 이상(54%)은 대형 재난 소식 때문에 일상에 영향이 있을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답했습니다.
나에게도 대형 사고가 닥칠까 봐 불안하다는 응답, 무려 70%에 달했습니다.
반면 정부에 대한 평가는 혹독했습니다.
재난을 당하면 정부로부터 충분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10명 중 2명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그렇지 않을 거라고 봤습니다.
▶ 인터뷰 : 최영안 / 심리학 박사
- "2차, 3차 피해자들에 대한 구체적인 노력이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피해자에 대한 도움이 없다면 (불안이) 굉장히 확산해서 (사회에) 큰 불신을 가지는…."
재난 사고에 대한 불안감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지만, 막상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정부도, 사회도 재난 생존자와 유가족들을 잊습니다.
매일 악몽 같은 트라우마를 견뎌내는 건 오로지 참사 피해자들의 몫인데요.
그들을 직접 만나봤습니다.
이어서 박준우 기자입니다.
【 기자 】
2003년 2월, 12량의 객차가 불에 타 400명 가까운 사상자가 발생한 대구 지하철 참사.
당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김대호 씨.
사고 때 유독가스를 많이 마셔 호흡기 질환과 위암까지 얻었지만, 김 씨를 가장 괴롭히는 건 불면증과 정신 분열입니다.
▶ 인터뷰 : 김대호 / 대구 지하철 참사 생존자
- "내가 여기 누워 있으면 여자가 귀신이 돼서 내 앞에 서 있어요. 내 허리끈을 잡았을 때 못 살려준 여자가. 300만 원 들여서 굿도 하고, 내가 그때 정신이 좀 이상했다고…."
혼자 살았다는 죄책감, '생존자 증후군'입니다.
이 사건 이후 국가 차원의 트라우마 지원 체계가 논의됐지만 지지부진한 게 현실입니다.
전국 17개 재난심리지원센터에 투입되는 연간 정부 예산은 겨우 2억 원.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국내 첫 '트라우마 관리 센터'가 설립됐지만, 상담자 한 명당 100명을 관리할 정도로 열악합니다.
▶ 인터뷰 : 김수진 / 안산온마음센터 부센터장
- "(세월호) 가족 분들도 굉장히 불안해하고 계세요. 겨우 누군가에게 마음을 열었는데 이 사람이 어디로 사라질까 봐, 떠날까 봐 그래서 (센터 운영이) 제도적으로 보장됐으면…."
이에 비해 9.11테러를 겪은 미국은 중앙정부가 심리 치료에만 지난 10년 동안 3조 원을 투입해, 지금까지 피해자 자택을 방문 관리하고 있습니다.
장기적인 치료가 이뤄지지 않는 우리나라와는 대조되는 부분입니다.
▶ 인터뷰 : 성수대교 붕괴 사고 희생자 유가족
- "찾아와서 심리치료를 해준다든가 유족 대표들도 있고 연결되는 분들도 있으니까 전부 같이 가서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편리성을 신경 써준다면…."
▶ 스탠딩 : 박준우 / 기자
- "제2, 제3의 대형 재난은 언제든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그때마다 사고 피해자들에 대한 심리치료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한, 겉은 말짱해도 속은 골병이 든 한국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MBN뉴스 박준우입니다. [ideabank@mbn.co.kr]"
영상취재 : 김재헌, 조영민, 김회종 기자
영상편집 : 송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