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성염색체 이상에 따른 남성 불임은 혼인을 취소할 만한 이유가 되지 못한다고 판결했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아내 A씨가 남편 B씨를 상대로 낸 혼인 취소 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고 3일 밝혔다.
A씨와 B씨는 2010년 9월 결혼중개업체를 통해 2011년 1월 결혼했다. 초등학교 교사였던 A씨와 재활의학과 의사였던 B씨의 결합에 장모 김 모씨는 전세자금을 보태주고 신접살림을 차려줬다.
아내 A씨는 결혼 직후부터 아이를 원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남편인 B씨는 아내와의 성관계를 꺼렸다. 한 달에 2~3회 정도뿐인 성생활에서도 발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유사 성행위로 관계를 마무리하는 한편 2011년 4월부턴 급기야 아내와 떨어져 거실에서 자기도 했다.
결국 부부는 불임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 B씨가 무정자증에 선천적 성염색체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B씨가 앓던 ‘모자이시즘’이란 질병은 불임을 유발할 가능성이 있었다.
B씨는 실망한 아내에게 “형의 정자를 이용해 인공수정을 받는 건 어떠냐”는 제안까지 했지만 A씨는 이를 거절했고, 부부 사이의 불신과 갈등은 더욱 깊어졌다.
그러던 중 아내 A씨는 남편에게 과거 병력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B씨가 7살 때 한 쪽 고환을 제거한 시술을 받은 적이 있었던 것. 남편은 2009년 자전거를 타다 부상을 입어 성기에 한 차례 더 수술을 받은 전력까지 있었다.
A씨는 의학적 전문지식을 갖춘 남편이 본인이 처음부터 불임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 사실을 숨기고 결혼했다며 “혼인을 취소해달라”고 소송을 제기했다.
하급심 판단은 엇갈렸다. 1심은 남편의 병력이 ‘혼인 취소’ 사유에는 이르지 못한다고 판단했다. 대신 “둘은 이혼한다”고 판결했다.
1심 법원은 “성 염색체 이상 증상은 군 면제사유에 해당함에도 B씨는 3년 간 병역의무를 이행했다”며 “혼인 이후 불임검사를 받는 과정에서 비로소 자신의 성기능 장애 사실을 알게 됐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진단을 받은 후 아내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오히려 아내와 각방을 사용하고 대화를 회피했을 뿐 아니라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며 “위자료 5000만원을 지급하라”고 했다.
2심은 남편의 불임이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한 사유’라고 봤다.
항소심 법원은 “남편의 상태가 향후 개선될 수 있다고 볼 자료가 부족하고, 특히 성염색체 이상증은 향후 아내와의 성교나 임신이 가능하더라도 2세에게까지 유전될 가능성을 불식하기 어렵다”며 “아내가 혼인 전에 이 같은 사유를 알았다면 B씨와 혼인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아내 손을 들어주고 혼인을 취소했다.
남편은 항소심 판단에 불복했다. 결국 대법원까지 온 사건에서 대법원은 1심과 같은 취지로 항소심 결과를 재차 뒤집고 성염색체 이상은 혼인 취소 사유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혼인의 본질은 양성 간의 애정과 신뢰에 바탕을 둔 인격적 결합”이라고 전제한 뒤 “B씨에게 성염색체 이상과 불임 등의 문제가 있더라도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야간수면발기검사’에서 정상 범위의 결과가 나타나는 등 발기능력과 사정능력이 문제되지 않았고, A씨는 B씨와의 성관계
대법원 관계자는 “성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불임이 민법 816조 2호의 혼인 취소 사유가 되는지에 관해 대법원에서 구체적 판결을 내린 첫 사례로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김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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