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내곡동 예비군 동원훈련장에서 발생한 총기 난사는 불과 10초 만에 이뤄졌으며 현장에 있던 간부와 현역병은 미처 손을 쓰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20대 가해자 최모씨는 범행을 계획한 듯 총기 난사를 하기 쉬운 맨 왼쪽 사로(사격 구역)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으며 총기 고정을 위한 안전 고리에 총기를 걸지도 않았다.
해당 사건을 수사 중인 육군 중앙수사단장 이태명 대령은 14일 중간수사 결과 발표에서 “10초 안에 (총기 난사)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씨는 전일 오전 10시 37분께 사격장 1사로에서 표적지를 향해 1발을 발사한 다음 갑자기 뒤로 돌아 부사수로 대기 중이던 예비군 20대 윤모씨에게 먼저 총을 발사했다.
이어 최씨는 옆에 늘어선 사로 쪽으로 방향을 돌려 총기를 난사해 2, 3, 5사로에 있던 예비군 3명이 총에 맞아 쓰러졌다.
이미 10발 사격을 전부 끝낸 상태였던 4사로 예비군은 긴급히 몸을 피해 구사일생으로 화를 면했다.
동료 예비군들에게 7발을 난사한 최씨는 9번째 총탄을 자신의 이마에 쏘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과 10초 만의 일이었다.
훈련 통제를 위해 사격장에 배치됐던 대위급 장교 2명과 현역병 조교 6명은 최씨의 돌발 행도이 시작되자 모두 사로 뒤에 있는 경사지로 몸을 피했다.
최씨와 가장 가까이 있던 현역병은 무려 7m나 떨어진 곳에 있어서 미처 그를 제압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중앙통제관 자격으로 통제탑에 있던 대위급 장교 1명도 마이크로 ‘대피하라’고 외친 뒤 탑 옆으로 몇 걸음 피했다.
군 관계자는 “현장에 있던 장교와 현역병들은 최씨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차마 제압할 생각을 하지는 못하고 일단 몸을 피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씨가 쓰러져 총기 난사가 멎자 중앙통제관은 제일 먼저 사로에 쓰러진 4명의 부상자들에게 다가갔다.
중앙통제관은 1∼3사로 총기의 조정간을 ‘안전’으로 바꿔 격발되지 않도록 한 다음 사로 아래에서 대기 중이던 군의관과 의무병을 불러 심폐소생술을 포함한 응급처치를 시작했다.
이들은 사건 발생 5분만인 10시 42분께 2사로에 쓰러져 있던 부상자 20대 안모씨부터 210연대 구급차에 태웠다. 구급차는 10시 47분께 부대 정문을 통과했다.
이들은 구급차가 부대 정문을 통과할 무렵 119에도 구급차를 요청했으며 119 구급차는 20대 박모씨를 태워 병원으로 향했다. 이어 인접 부대인 210연대 구급차와 다른 119 구급차가 각각 1명의 부상자를 이송해 11시 13분에는 모든 부상자들이 부대 밖으로 옮겨졌다.
육군 관계자는 “부상자 응급처치와 병원 이송은 매뉴얼대로 진행됐고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사건의 중간수사 결과 발표에서도 육군의 훈련 통제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는 여실히 드러났다.
사건이 발생한 사격장에는 사로마다 총기의 전방 고정을 위한 안전 고리가 있었으나 소홀한 통제 탓에 최씨는 자신의 총기를 고정하지 않았다.
중앙수사단 관계자는 “예비군은 총기를 안전 고리에 채우도록 돼 있고 조교가 이를 확인해야 한다”며 최씨의 경우 조교의 확인을 제대로 받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최씨를 통제하는 조교는 최씨가 안전 고리에 손을 대는 모습만 보고 총기를 고정한 것으로 판단하고 넘어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나머지 19개 사로에 배치된 예비군들은 전부 안전 고리에 총기를 고정한 상태였지만 최씨만 총구를 옆이나 뒤로 마음대로 겨눌 수 있었다.
훈련 통제를 위해 사격장에 배치된 장교와 현역병은 전부 무장하지 않은 상태였다. 이 때문에 최씨를 제압하는 것이 더욱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예비군이 사격장 사로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었던 점도 총기 난사를 초래한 원인으로 꼽힌다.
최씨는 마치 범행을 계획한 듯 입소 첫날과 사건 당일 조교와 동료 예비군들에게 1사로 배치를 요청했다. 1사로는 조교에게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고 동료 예비군들을 향해 총을 쏘기도 쉬운 장소다.
부상자들 중에 머리를 다친 사람은 있지만 사건 당시 사로에 있던 예비군들은 전부 방탄모를 착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매경닷컴 디지털뉴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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