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로 유명한 소설가 신경숙 씨가 일본 탐미주의 작가 미시마 유키오의 소설을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문학계가 충격에 휩싸였다. 신 작가에 관한 표절 시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어서 어떤 입장을 내놓을지도 관심사다.
장편소설 ‘국가의 사생활’, ‘내 연애의 모든 것’ 등을 쓴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응준 씨는 16일 인터넷 매체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우상의 어둠, 문학의 타락-신경숙의 미시마 유키오 표절’이란 제목의 기고문을 싣었다. 이 씨는 “기고문에서 창작과비평이 출간한 신 작가의 ‘오래전 집을 떠날 때’ 가운데 수록된 단편 ‘전설’의 한 대목(240~241쪽)이 미시마 유키오의 ‘우국(憂國)’을 표절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기고문에서 표절이 의심되는 부분을 발췌해 나란히 올렸다. 각각 4개와 7개 문장으로 이뤄진 해당 부분은 같은 글이나 다름없이 비슷하다는 게 이씨의 주장이다.
“두 사람 다 실로 건강한 젊은 육체의 소유자였던 탓으로 그들의 밤은 격렬했다. 밤뿐만 아니라 훈련을 마치고 흙먼지투성이의 군복을 벗는 동안마저 안타까와하면서 집에 오자마자 아내를 그 자리에 쓰러뜨리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레이코도 잘 응했다. 첫날밤을 지낸 지 한 달이 넘었을까 말까 할 때 벌써 레이코는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고, 중위도 그런 레이코의 변화를 기뻐하였다.” (미시마 유키오 ‘금각사, 우국, 연회는 끝나고’ 233쪽. 김후란 옮김. 주우세계문학전집. 1983년 발행)
“두 사람 다 건강한 육체의 주인들이었다. 그들의 밤은 격렬하였다. 남자는 바깥에서 돌아와 흙먼지 묻은 얼굴을 씻다가도 뭔가를 안타까워하며 서둘러 여자를 쓰러뜨리는 일이 매번이었다. 첫날밤을 가진 뒤 두 달 남짓, 여자는 벌써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 여자의 청일한 아름다움 속으로 관능은 향기롭고 풍요롭게 배어들었다. 그 무르익음은 노래를 부르는 여자의 목소리 속으로도 기름지게 스며들어 이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게 아니라 노래가 여자에게 빨려오는 듯했다. 여자의 변화를 가장 기뻐한 건 물론 남자였다.” (신경숙)
이씨는 이 대목을 비교하면서 “다른 소설가의 저작권이 엄연한 ‘소설의 육체’를 그대로 ‘제 소설’에 오려붙인 다음 슬쩍 어설픈 무늬를 그려 넣어 위장하는, 그야말로 한 일반인으로서도 그러려니와, 하물며 한 순수문학 프로작가로서는 도저히 용인될 수 없는 명백한 작품 절도행위, 표절”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특히 “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라는 시인 김후란이 번역한 표현을 거론, “이러한 언어조합은 가령, ‘추억의 속도’ 같은 지극히 시적 표현으로서 누군가 어디에서 우연히 보고 들은 것을 실수로 적어서는 결코 발화될 수 없는 차원의, 그러니까 의식적으로 도용하지 않고서는 절대로 튀어나올 수 없는 문학적 유전공학의 결과물”이라고 강조했다.
이씨는 그러면서 “만약 신경숙이 자신의 머릿속에서 흘러나오는 대로 받아 적다보니 시인 김후란 번역의 우국 속 저 부분(기쁨을 아는 몸이 되었다)을 표절한 전설의 그 부분이 저절로 나타나게 된 것이라고 주장하려면 (중략), 자신의 집 앞에 커다랗고 둥근 바위 하나가 있었는데 어느 밤 태풍이 몰아쳤고 이튿날 맑게 갠 아침에 눈을 떠 보니 그 커다랗고 둥근 바위가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과 똑같은 모양으로 간밤 비바람에 깎여 있더라는 해괴한 어불성설을 명쾌한 사실로 증명해내야만 할 것”이라며 표절을 거듭 강조했다.
또 자신의 표절 의혹 제기와 관련해 “2000년 가을 즈음부터 줄줄이 터져 나온 신경숙의 다양한 표절 시비들을 그냥 시비로 넘겨버리면서 이후 한국 문단이 여러 표절 사건을 단호하게 처벌하지 않는 악행을 고질화·체질화시켰다”고 질타했다.
이씨는 끝으로 “대한민국의 대표 소설가가 일본 극우 작가의 번역본이나 표절하고 앉아있는 한국문학의 도덕적 수준을 우리 스스로 바로잡는 것 말고는 한국
한편 신 작가는 지난 1999년 발표한 소설 ‘딸기밭’과 장편 ‘기차는 7시에 떠나네’, 단편 ‘작별인사’ 등의 작품에사도 표절 시비에 휘말렸다.
[매경닷컴 전종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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