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2일 저녁 7시께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인근의 한 식당. 회사원 이민혁 씨(30·가명)는 퇴근 후 직장 동료와 한 삼계탕 집을 방문했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엄연히 한국 음식을 판매하는 한국 간판의 식당이건만, 입구에서 호객행위 하는 중년 남성이 이씨 일행의 진입을 막아섰기 때문. 어이가 없었던 이씨가 “빈 자리도 있는데 왜 막아서냐”고 따졌지만 이 남성은 경계의 눈초리로 “내국인은 받지 않는다. 관광객만 들어올 수 있다”며 이씨 일행을 돌려보냈다. 이씨는 “돌아가려던 찰나 관광버스 한 대가 내리더니 40~50명의 중국인 관광객 무리가 한꺼번에 식당으로 들어가더라”며 “한국인을 역차별 하는 한국식당은 처음봤다”고 혀를 찼다.
서울 종로구 일대를 중심으로 내국인을 배척하는 음식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 식당들은 지난 6~7월 메르스 사태로 중국인 관광객이 일시 급감하자 한국 손님을 받았던 곳이다.
하지만 메르스가 종식되고 다시금 중국인 단체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내국인 손님에 대한 역차별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서울 종로구 경복궁역 일대에만 이 같은 식당이 5곳에 달했다. 이날 점심시간 무렵 붉은색의 버스 3대가 일제히 식당가로 들어섰는데, 모두 중국인 관광객을 태운 버스였다. 각 버스마다 40여명의 중국인들이 떼를 지어 내리더니 약속이나 한 듯 일대 식당으로 빨려 들어갔다.
기자도 이들이 향하고 있는 한 한식뷔페 식당에 들어섰지만 “내국인은 받지 않는다”며 곧바로 저지당했다. “한국 식당에서 한국인을 배제하는 이유가 뭐냐”는 물음에 식당 관계자는 “일부러 안 받는 건 아니다”며 “ 설령 내국인이 오더라도 중국인들이 너무 시끄러워 자발적으로 나가는 것”이라고 얼버무렸다.
인근의 또 다른 한식뷔페집도 마찬가지였다. 역시나 “내국인은 들어올 수 없다”며 발걸음을 돌리게 했다. 식당 내부에는 이미 수십여명의 중국인 관광객이 단체로 점심을 먹고 있었는데, 내국인으로 보이는 사람은 눈에 띄지 않았다. “메르스 사태 때는 한국 손님도 받았지 않았냐”는 기자의 물음에 한 식당업주는 머뭇거리다 “한 달 동안 아예 문을 닫고 있었다”며 둘러대기도 했다.
인근 자영업자 정 모씨(42)는 “일대가 중국 관광객들이 많이 찾다보니, 일부 식당을 중심으로 내국인은 아예 받지 않는 곳으로 변했다”며 “메르스 창궐 당시 관광객이 줄어 한국 손님을 받는 듯 하더니, 딱 그때 뿐이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자영업자도 “대략 2~3주 전부터 중국인 관광객이 다시 유입되니까 내국인을 안 받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현상의 이면엔 일대 한식당들과 관광업계 간 커미션 관행이 있다. 관광 업체가 중국인 단체 관광객을 특정 식당에 보내주면 해당 식당의 발생 수익 중 일부를 이 업체가 가져가는 식이다. 중국 관광객을 통한 수입이 워낙 크다 보니 한국 손님은 아예 받지 않는 것이다. 이곳에서 만난 한 관광버스 운전기사는 “회사에서 가라고 하는 식당이 이미 정해져 있다”며 “업체 뿐 아니라 관광 가이드도 식당에서 커미션을 챙기는 구조”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경찰 관계자는 “특정 회사와 식당 업주 간에 ‘관광객 한 명당 몇 프로를 준다’는 식의 커미션 계약을 맺는 정황이 발견되면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다”며 “구청 단속반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 수익이 좋다는 이유로 내국인을 안 받는 건 분명히 차별이고 잘못된 것”이라며 “관련 규정이 없어도 행정기관의 자체 노력을 통해 시정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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