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성 친목 커뮤니티가 집단 고소사건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지하철에서 아무 죄 없는 남자를 몰카범으로 몰았다는 글에 대해 한 회원이 사과를 해야 한다는 댓글을 달았다가 상당수의 회원들로부터 욕설에 가까운 말을 들은 뒤 이들을 모욕죄로 무더기 고소한 것이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6월 말 이 커뮤니티의 한 회원이 올린 글에서 시작됐다.
이 여성은 ‘지하철 몰카 의심 신고 넣은 후기’라는 글을 통해 지하철을 탔다가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듯한 남성을 발견하고 몰카를 찍는 것으로 의심이 된다며 이 남성을 신고했다.
이 여성은 다음역에서 대기하던 역무원을 통해 몰카범으로 의심되는 남성을 지하철에서 내리게 하고 휴대폰 영상 확인을 요구했다. 성추행범으로 몰린 이 남성은 그 여성의 사진을 찍은 적이 없다고 항의하다 결국 휴대폰을 내줬는데 문제가 될 만한 사진은 전혀 없었다. 주머니도 뒤졌지만 지갑만 나왔다. 여기까지는 지하철에서 흔히 있을 법한 일이지만 문제가 되는 내용은 다음부터 나왔다.
이 여성은 이 사건 이후 지하철 관제센터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그쪽에서 상황이 잘 마무리됐냐면서 그 남성에게 사과를 했는지를 물었다. 이 여성은 자신이 왜 그 남성에게 사과해야 하냐고 반문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이 여성은 그 글에서 “목적지를 향해 가던 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사람이 나를 불쾌하게 만들었고 의심받을 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목적지를 향해 가던 중 내려서 내 시간을 써가면서 휴대폰을 확인했다. 상대방이 불쾌함을 느끼게 한 사람은 그 사람인데 내가 왜 사과해야 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고 전했다.
이 글의 댓글에서 회원들 간에 사과를 해야 하느냐 아니냐를 두고 토론이 벌어졌다. 일반인의 상식에서는 사과를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여성 커뮤니티라는 특성 탓에 댓글의 90% 정도는 사과를 할 필요가 없다는 내용이었다.
사과를 해야 한다고 댓글을 달았던 회원들을 조롱하는 댓글이 이어지면서 나중에는 이들도 자신의 생각이 짧았다는 사과문까지 게재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 와중에 한 네티즌은 “사과도 안 하다니… 진짜 봉변이네”라는 댓글을 단다. 사과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다른 회원들은 남성의 성기를 빗댄 신조어를 갖다붙이면서 이 네티즌을 조롱하기 시작했다.
네티즌들의 반박이 이어지자 이 회원은 “화장품 매장에서 직원이 자기랑 자꾸 눈 마주친다고 뭐 훔친걸로 오해해서 가방 검사해보자고 했는데 훔친 물건이 없으면 당연히 직원이 사과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따졌지만 이 회원을 향한 조롱과 인신공격적인 발언은 더욱 거세졌다.
이후 1개월여의 시간이 흐른 뒤 어떤 회원이 커뮤니티에 ‘나 경찰한테 전화왔어’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면서 사태는 2막을 맞는다. 경찰에서 댓글 모욕 사건으로 조사를 한다며 연락이 온 것이다. 이 글을 시작으로 다른 회원들이 속속 고소 당한 소식을 알렸다.
고소를 당했다는 한 회원은 “그 글에 많은 회원들이 ‘가해자 옹호하냐’, ‘여자맞냐’ 등의 댓글이 달렸는데 봉변이라고 댓글을 단 회원이 ‘욕 많이 먹고 있다고해서 와보니 너무 하다. 000이라고 한 회원들은 경찰서에서 보자’고 댓글을 달았다. 그 뻔뻔한 태도에 나는 지켜만 보고 있다가 ‘000을 000이라고 하지 못하고, 내가 홍길동인가’라고 댓글을 달았다”라면서 “경찰서에서 악플로 고소당했다고 연락이 왔는데 그 댓글에 000이란 단어는 그 회원을 지칭한 게 아니라고 답했다”는 글을 올렸다.
다른 회원도 “나말고도 다른 많은 회원들이 엄청 욕을 했는데, 어제 어떤 회원이 고소당했다는 글을 봤고 나도 방금 전화를 받았다. 경찰관이 다 모욕죄로 다 고소
고소건을 계기로 해당 커뮤니티의 여론도 급반전됐다. 사과를 할 필요가 없다는 여론이 다수였지만 현재는 사과를 하는 게 당연하고 ‘봉변 당했다’는 댓글을 단 회원은 잘못한 게 없다는 쪽으로 여론이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매경닷컴 고득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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