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나는 공무로 루마니아 부카레스트에 있었다. 명치절 아침 일본공사관 의식에 참석했다. 그곳에 기미가요 제창 때 피아노를 연주하는 흰 넥타이를 맨 청년이 있었다.…그가 당시 유럽 유학 중인 지휘자 겸 작곡가 안익태 군이라는 소개를 받았다”
에하라 고이치 일본 외교관이 지난 1952년 일본의 음악잡지 ‘레코드 예술’에 기고한 글 ‘안익태 군의 편모’의 일부분이다.
안익태(1906~1965)의 행적을 두고 그동안 수차례 친일 논란이 있었지만 그가 일본 명절에 기미가요를 연주했다는 내용을 담은 기록이 처음 공개됐다.
이 자료를 발굴한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안익태와 그의 후원자로 알려진 에하라와의 인연이 이때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며 “국제적으로 혼란스럽던 시기 안익태의 행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기고문에는 “조선에서 태어난 안군이 월천악을 교향곡화한 것에 대해 약간 기이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이라는 문구도 있다.
이는 안익태가 이날 일본의 대표적인 궁중아악인 월천악을 연주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이 교수는 “다만, 기록 중 1942년이라는 연도는 에하라의 착오로, 전체적인 맥락으로 볼 때 안익태의 연주는 1941년 명치절(11월 3일)에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하라는 도쿄제국대 법대를 졸업하고 베를린 주재 만주국 공사관 참사관 등을 역임했다.
그는 또 안익태가 작곡한 오케스트라와 혼성합창을 위한 교향적 환상곡 ‘만주국’을 작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익태 군의 편모‘에는 안익태와 독일 근대음악의 거장이자 나치 정권에 협조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관계에 대한 언급도 “안군은 당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지도를 받고 있었는데, 범접하기 어려운 노대가의 환심을 산 그의 수완에
이 교수는 “슈트라우스가 나치 정권에 협력해 선전음악을 보급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안익태가 나치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
[매경닷컴 디지털뉴스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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