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을 아주 유명하게 만들려구요. 그래야 공사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가 김영하 씨가 최근 거주지 주소를 자신의 소셜계정(페이스북)에 공개했다. 개인정보 유출이 민감한 요즘이지만, 그가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궁동산 일명 ‘개나리언덕’에 있는 자신의 집을 공개한 이유는 이 일대에 추진 중인 난개발을 막기 위해서다.
↑ [다음 아고라 ‘연희동 궁동산 개나리 언덕을 살려주세요’ 청원 사이트에 올라온 개발 중 모습. 사진 오른쪽 건물이 서연중학교로 현장에 바로 맞닿아있다.] |
궁동산은 그린벨트보다 개발이 더 어려운 생태환경지구인 ‘비오톱 1등급’의 산림보존지역으로 본래 지번 앞에는 ‘산’이 붙었던 개발 불가능 지역이었다.
그러나 서울시는 2013년 비오톱 등급을 낮췄다. 아무런 이유 없이 나무들이 고사하거나 부러지는 등 산림 훼손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이를 기다렸다는 듯 땅주인인 개발업체는 지난해 빌라 개발행위 허가(빌라 3동, 총 24가구)를 신청했다. 다행히 서대문구 도시계획심사위원회에서 허가는 부결됐다.
하지만 이 업체가 상급기관인 서울시에 행정심판을 제기해 이기자 구청 측은 지난 2월 개인재산이란 이유로 개발을 막을 수 없다며 허가했다. 이 후 업체는 4월부터 임야를 대지로 바꾸기 위해 산을 깎는 형질변경공사를 진행 중이다.
이로 인해 김씨 자택 앞마당에 있던 정자와 살구나무는 지난 3일 아무런 공사협조 절차없이 철거당하고 뽑혀나갔다. 결국 서대문구청과 서울시, 신문고 등에 홀로 민원을 제기해오던 김 작가는 “조금 특별한 독자와의 만남을 진행하겠다”며 이 개발현장을 알리기 시작했고 지난 4일부터 8일까지 5일간 하루종일 앞마당에서 벌어지는 공사현장을 찾아온 시민들을 만났다.
실제 지난 8일 오후에 찾은 현장에는 소설가 황석영씨와 환경재단 최열 대표를 비롯한 연희동 주민들, 독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곳을 찾은 건축가와 환경단체들은 현장의 난개발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그러나 담장 너머에선 건설장비가 희뿌연 먼지를 내뿜으면서 옹벽설치를 위한 작업을 하고 있었다. 현장에는 제대로 된 공사 펜스는 커녕 공사 인부들은 안전모 하나 없이 공사를 하고 있어 안전사고에 그대로 노출돼 있었다.
흩날리는 비산먼지 때문에 현장 옆 서연중학교는 뜨거운 한낮에도 창문을 닫고 수업을 해야 했다. 이곳 주민들은 공사장 아래 있는 중학교로 산사태가 나지 않을까 걱정스럽게 시선을 보냈다. 그런데도 이곳을 책임져야 하는 현장소장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공사 현장에 연결된 두 갈래의 길목에는 “공사현장 소음·미세먼지·진동 고통스럽다”, “서울시는 불법산림훼손 묵과하고 승인한 토지형질변경을 즉각 취소하라”, “궁동산불법 난개발 제2의 우면산홍수 산사태로 돌아온다”라는 플랫카드도 걸려있었다.
아직 등기부상 ‘임야’인 이곳에서 산의 모습은 없었다. 다만 공사장 뒤쪽에 조금 남아있는 녹지가 얼마 전까지 이 일대가 수풀이 우거진 숲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기가 막힌 것은 해당 현장이 현재 매물로 나와 있다는 점이다. 9일 한국부동산거래소에서 확인한 결과 해당 토지는 195억원에 매물로 등록된 상태다. 매물정보란에는 현재는 야산 상태이며 빌라신축이 가능한 부지이긴 하나 개발행위를 하려면 허가가 필요하다는 친절한 설명도 남겨져 있다.
이 개발업체가 해당 토지를 10년 이상 보유하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 가격에 매매가 이뤄진다면 개발 차익은 187억원이 넘는다. 실제 개발이 시작된 후 이 토지의 공시지가는 33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개발업체를 위한 허가라는 지적을 피하기 힘든 부분이다.
아직 이곳에 신축빌라가 준공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 한다. 이 맹지와 연결되는 도로 너비가 6m 뿐이기 때문에 I개발업체는 도로 너비 확장이 가능한 서연중학교 소유의 땅 21㎡와 현재 학교 옹벽이 세워져있는 개발업체 소유의 땅 14㎡을 교환해달라는 제안을 넣어놓은 상태다.
서부교육지원청은 개발업체에 “토지 교환 및 매각은 교육감 승인이 전제조건”이라고 밝혔지만, 아직 교육감 승인도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이 공사는 확보되지도 않은 토지를 확보된 것인양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
김씨는 “지금 이 공사를 막지 않으면 인근 필지마저 사들인 I개발업자가 같은 방법으로 개발을 진행해 개나리언덕은 사라지고 빌라들이 들어서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의 싸움은
[매경닷컴 이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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