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철학자 헤겔이 한 말이다. 시대가 변하면 행동이 달라지기 마련이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시대에 따라 사랑 유형, 표현법 등이 달라진다. 노래에는 시대상이 반영돼 있다. 온라인음악포털 멜론에 올라있는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시대별 인기가요를 통해 당대의 사랑유형을 살펴봤다.
◇ 1970년대 사랑표현은 간접적…마음 못 전해 전전긍긍
1970년대 음악차트 1위엔 남정희의 ‘가는 정 오는 정’이 올랐다. 2위는 정훈희 ‘그 사람 바보야’, 3위는 나훈아 ‘그정 못잊어’가 차지했다. 노랫말에 비유·은유를 사용해 이뤄지지 못한 사랑을 간접적으로 슬퍼한다. 사랑하지만 마음을 전하지 못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아롱진 옷자락에 서글픈 사연 안고 / 내 마음은 울면서도 겉으로는 웃으며 / 사랑도 못했어요 / 이름 없는 꽃이라서 / 가는 정 오는 정에 상처만 깊어간다”(가는 정 오는 정)
“단 한번 윙크로 내 마음 줄까봐 / 살짝쿵 윙크한 그 사람 떠났네 / 다시 한 번 윙크하면 웃어줄 텐데 / 다시 한 번 윙크하면 사랑할텐데 / 아 나는 몰라 / 그 사람 바보야”(그 사람 바보야)
“푸른 파도 갈매기도 정든 항구도 / 날이 새면 떠나간다 그리운 임을 두고서 / 못다한 사랑 아쉬움만 남기고 떠나가지만 / 그정 못잊어”(그정 못잊어)
◇ 1980년대 여성들의 기약없는 기다림
1980년대에도 사랑을 간접적이면서 은근하게 표현하는 건 여전하다. 이 시기엔 특히 사랑하지만 제대로 표현 못하고 기다리기만 하는 여성가수들의 가요가 인기를 끌었다. 남녀 사이에서 여성은 피동적인 역할로서 남성이 다가와 주길 바라고 있다. 대표적인 곡으로는 윤시내 ‘고목’, 희자매 ‘그 사람 바보’, 계은숙 ‘기다리는 여심’, 심수봉 ‘당신은 누구시길래’ 등이 있다.
“그 사람 지금 어디에 있나 / 어느 하늘 아래 무엇을 할까 / 어린 시절 고목 여전한데 / 나만 홀로 여기에 서있네 / 그 사람 지금 어디에”(고목)
“속으론 나를 좋아하면서 겉으론 새침한 그 사람 / 안보는 척 나를 지나치면서 어쩌다 마주치면 외면을 하네 / 무슨 사람이 그럴까 / 용기도 없나 봐 / 만나자 해볼까 편지를 띄어볼까 / 망설이다가 세월만 가네”(그 사람 바보)
“흐르는 구름 위에 마음 띄우며 / 내 곁에 와 달라고 기원하면서 / 오늘도 기다리는 여인입니다”(기다리는 여심)
◇ 1990년대 유쾌하고 솔직해진 남녀관계
1990년대에는 보다 솔직해진 가사들이 눈에 띈다. 사랑얘기를 보다 유쾌하게 풀어내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 시기 1위를 차지한 곡은 변진섭의 ‘희망사항’이다. 본인이 만나고 싶은 이상형을 세부적으로 재미있게 풀어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여자 / 밥을 많이 먹어도 배 안 나오는 여자 / 내 얘기가 재미없어도 웃어주는 여자 / 난 그런 여자가 좋더라”(희망사항)
◇ 2000년대 애절해진 남성들
2000년대엔 남성들이 부르는 애절한 사랑노래가 약진했다. 남성은 강인해야 한다는 전통적인 인식과는 달리 사랑 때문에 아파하는 존재로 대중들의 감성을 자극했다. 조성모의 ‘아시나요’와 조규만의 ‘다 줄 거야’가 대표적이다.
“아시나요 얼마나 기다렸는지 그대 오가는 그 길목에 숨어 / 저만치 가는 뒷모습이라도 마음껏 보려고 한참을 서성인 나였음을 / 왜 그런 얘기 못했냐고 물으신다면 / 가슴이 아파 아무 대답도 못하잖아요”(아시나요)
“너무 힘이 들 땐 실컷 울어 / 눈물 속에 아픈 기억 떠나보내게 내 품에서 / 서글픈 우리의 지난날들을 / 서로가 조금씩 감싸줘야 해 / 난 네게 너무나도 부족하겠지만 / 다 줄 거야 내 남은 모든 사랑을”(다 줄 거야)
◇ 2010년대 여성은 도발적, 가사는 솔직 그 자체
2010년대 가요를 통해 본 여성은 사랑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걸 넘어서 도발적이기까지 하다. 미쓰에이는 ‘Bad Girl Good Girl’(베드걸 굿걸)을 통해 여성을 판단하는 남성들의 잣대에 일침을 가했다. 아이유는 ‘잔소리’를 부르며 남자친구에게 사랑하니까 하는 얘기라고 말한다. 소녀시대는 ‘Oh!’에서 오빠 많이 사랑한다고 외친다. 반면 남성들은 지고지순한 사랑을 하다 이별에 상처받고 힘들어한다. MC몽 ‘죽을 만큼 아파서’, 포맨 ‘못해’, 2AM ‘죽어도 못 보내’, 옴므 ‘밥만 잘 먹더라’ 등이 인기가요 상위권에 올랐다.
또 가사는 훨씬 솔직해졌다. 우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상황을 노랫말에 녹여냈다. 프라이머리는 술을 마시다 전에 만났던 여성들에게 자냐고 연락하는 ‘자니’라는 곡으로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포미닛은 ‘이름이 뭐예요?’라는 곡을 들고 나왔다. 마음에 드는 상대방(남성)에게 이름과 전화번호를 대놓고 묻는다. 지난해 소유와 정기고는 ‘썸’이란 곡으로 서로 관심 있지만 아직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하진 않아 애매한 남녀관계를 그려냈다. 이 시대 젊은 층들의 연애관을 잘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겉으론 Bad girl 속으론 Good girl /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 겉모습만 보면서 / 한심한 여자로 보는 너의 시선이 난 너무나 웃겨”(Bad Girl Good Girl)
“술기운이 올라오니 사내놈들끼린 결국엔 여자 얘기 / 적적해서 서로의 전화기를 꺼내 번호목록을 뒤져보지 / 너는 지
“요즘 따라 내거인 듯 내거 아닌 내거 같은 너 / 네거인 듯 네거 아닌 네거 같은 나 / 순진한 척 웃지만 말고 / 그만 좀 해 너 솔직하게 좀 굴어봐”(썸)
[매경닷컴 김지혜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