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14일 강덕수 전 STX 회장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유는 회계분식 혐의에 대한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이 무죄로 바뀌면서 양형이 대폭 줄었기 때문이다.
당초 검찰은 강 전 회장이 2009년 3월 STX조선해양의 홍경진 부회장, 김노식 전 CFO와 공모해 “적자가 발생한 ‘2008 회계연도 손익결산’에서 영업이익과 당기순손익을 과대계상해 흑자가 발생한 것처럼 보이게 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봤다.
그 결과 2008년 당기순손실 2523억원을 당기순이익 356억원으로 속이는 등 2조3000억원대 분식회계를 저질렀고, 허위로 작성·공시된 재무제표 등을 이용해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STX조선해양은 2007년부터 환율의 장기적인 하락 추세에서 환 헤지를 공격적으로 시작했으나 2008년 세계 금융위기로 환율이 급격히 상승한 결과 막대한 손실이 발생했다”며 “검찰은 이 환손실을 가리기 위해 회계분식을 했다고 공소를 제기했지만, 피고인은 환손실에 관해 잘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회계담당자인 김 전 CFO는 모든 내용을 피고인에게 가감없이 보고했다고 주장했지만, 재판 과정에서 이런 내용이 보고에 일부 포함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보고를 한 바가 없음이 드러났다”며 “그렇다면 묵시적인 공모로 그칠 수밖에 없는데, 회사의 존망이 달린 정책적 실패를 묵시적 공모만으로 인정하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또 “2008년도 회계분식의 동기를 인정할 만한 증거가 없으므로 이후의 회계분식에 관한 김 전 CFO의 진술도 모두 신빙할 수 없어 이 부분의 공소사실은 전체적으로 증거가 없는 것으로 귀결됐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함께 기소된 홍 전 부회장은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으로 감형됐다. 김 전 CFO는 1심과 같은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다.
이날 재판부가 강 전 회장의 집행유예를 선고하자 150석의 대법정을 가득 메운 STX그룹 관계자 등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거나 눈물을 흘렸다.
한편 강 전 회장이 집행유예로 풀려났지만 STX 그룹에 대한 경영 재개를 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재계의 관측이다. 자금 동원능력이나 법적인 측면에서 강 전 회장의 경영 복귀에는 걸림돌이 많기 때문이다.
우선 강 전 회장은 이미 감자 등으로 자신의 지분이 대부분 없어진 상황이다. 의미있는 규모의 사재를 보유하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평가다.
설사 사재가 어느정도 있다해도 무죄 판결이 아닌 집행유예 신분으로 지분이 전혀 없는 전 사주가 경영 재개 움직임을 보인다는 게 국민들에게 큰 반감을 불러올 수도 있다.
현재 STX그룹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은 강 전 회장의 경영재개 가능성에 대해 ‘말도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채권금융기관 출자전환 주식 관리 및 매각 준칙’에 따르면 “부실 책임이 있는 구사주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우선협상대상자에서 제외한다. 다만 부실책임 정도 및 부실 정상화에 기여한 정도에 따라 예외로 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강 전 회장은 부실 책임이 중하고, 이후 정상화에 기여한 바가 거의 없다
그러나 전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금호산업을 되찾으면서 그룹 재건에 나선 박삼구 회장은 보유주식을 100대 1 감자로 모두 없앤 후에도 금호산업에 2200억원, 금호타이어에 1120억원의 사재를 털어넣으며 부실정상화에 기여한 바 있다.
[전범주 기자 / 이현정 기자 / 정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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