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1차 상봉이 끝났습니다.
65년 넘게 떨어져 지낸 남북의 이산가족에게 2박3일은 너무나 짧았습니다.
오늘 마지막 작별 상봉장에서는 구슬픈 노래가 들렸습니다,
북측 상봉단 가운데 가장 고령인 리흥종 씨가 남쪽의 딸에게 '애수의 소야곡'을 들려줬습니다.
▶ 인터뷰 : 리흥종 / 북측 이산가족 '애수의 소야곡'
- "♬운다고 옛사랑이 오리오마는 눈물로 달래보는 구슬픈 이 밤… 고요히 창을 열고 별빛을 보면 그 누가 불러주나 휘파람 소리"
애수의 소야곡은 일제 식민시대 만들어진 남인수의 곡입니다.
일제 식민통치 아래 신음했던 한이 담겼지만, 오늘은 남북 분단의 한이 담겼습니다.
'차라리 잊으리라 맹세하건만 못생긴 미련인가 생각하는 밤'이라는 가사는 65년을 떨어져 산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듯합니다.
딸 이정숙 씨는 소야곡 한 곡으로 부족했습니다.
▶ 인터뷰 : 딸 이정숙 씨
- "아버지! 내가 집에(남한) 가지고 가서 들을 거니깐 아버지가 노래 한 번만 더 해주세요."
딸의 부탁을 받고 아버지가 꺼내든 노래는 꿈꾸는 백마강이었습니다.
▶ 인터뷰 : 리흥종 / 북측 이산가족 '꿈꾸는 백마강'
- "꿈꾸는 백마강 들어봤겠지? ♬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잊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딸은 아버지의 노래를 따라불렀습니다.
이 노래를 어찌 아느냐는 아버지의 물음에 딸은 어릴 때 들었던 아버지의 노래를 어찌 잊겠느냐며 울먹였습니다.
정숙 씨는 아버지의 이별을 애써 외면했습니다.
▶ 인터뷰 : 딸 이정숙 씨
- "아버지가 이렇게 살아계시는지 누가 상상이나 했어요...아빠, 내가 또 만날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볼께요 아빠"
정숙씨가 만날 수 있게 기회를 만들어본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어떤 특별한 방법이 있지 않는 한 남북의 이산가족들이 다시 만나기는 사실상 어렵습니다.
애써 희망을 표현했던 것일까요?
결혼 7개월 만에 헤어진 80대 신혼부부의 헤어짐도 가슴을 먹먹하게 했습니다.
뱃속 아이를 품은 채 남편을 떠나 보낸 뒤 65년을 홀로 살아온 이순규 할머니는 북쪽에 있는 오인세 할아버지에게 프로포즈를 받았습니다.
▶ 인터뷰 : 이순규 / 우리측 이산가족
- "살아계시다는 것만으로도 좋죠. 다른 건 하나도 없어요."
▶ 인터뷰 : 南이순규 北오인세 씨 부부
- "65년 동안 기다리고 살았으니깐 벌금 내요! (벌금 왜 내가 내. 왜!) 벌금 내야죠. 하하하"
▶ 인터뷰 : 오인세 / 북측 이산가족 (어제)
- "사랑 한단말이야! 알겠어?"
▶ 인터뷰 : 이순규 / 우리측 이산가족 (어제)
- "'사랑'이라는 두글자가 얼마나 넓은 말인지 알아요?"
▶ 인터뷰 : 오인세 / 북측 이산가족 (어제)
- "알아! (어떻게 알아?) 처녀, 총각이 만나서 죽으나 사나 같이 하는 거…."
▶ 인터뷰 : 아들 오장균 씨
- "그쪽(북쪽)에 있는 어머니 질투해. 사랑한다고 하시면."
▶ 인터뷰 : 오인세 / 북측 이산가족
- "일없어! "
▶ 인터뷰 : 오늘 南이순규 北오인세 씨 부부
- "잘 가고 건강하게 잘 있어요. 난 그것 밖에 바라는 게 없어. (응.)"
처녀 총각이 만나서 죽으나 사사 같이 하는게 사랑이라는 할아버지의 말은 그렇게 하지 못했던 지난 세월의 미안함을 역설적으로 말한 듯합니다.
사랑한다는 80대 할아버지의 고백은 쑥쓰러움보다는 슬픔으로 다가왔습니다.
65년을 기다려왔던 말이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넥타이를 매어주며 건강하라고 당부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지하에서 보자고 했습니다.
이렇게 신혼부부의 이별은 끝났습니다.
동생들이 브라질로 이민을 떠나 볼 수 없었던 북녘의 할머니는 남한 측 방송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 인터뷰 : 북측 남철순 할머니 (영상편지)
- "어머니 묘소에 앞으로 내가 준 술 부어 드리고 인사 드려라. 하루빨리 통일되면 모여서 화목하게 살자. 죽기 전에 한번 만났으면 좋겠다. 앓지 말고. 앓지 말고 건강하게 나를 만날 때까지 살라."
일각에서는 이산가족 상봉을 이제 진부한 행사로 치부하기도 합니다.
너무 여러 본 보아온 터라 식상하다는 말까지도 나옵니다.
그런 사람들은 얼마 남지 않은 이산가족들에게 지금 일각이 얼마나 소중한지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보고 또 봐도 슬플 수 밖에 없는 이산의 아픔을 그렇게 표현해서는 안될 겁니다.
2박3일의 아픔을 우리는 언제까지 지켜봐야 할까요?
이산가족들 대
남북의 위정자들이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서신 왕래와 통신 교환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정치 논리가 천륜보다 앞서는 남북의 현실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