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치매 환자가 ‘모든 재산을 아들 대신 동생들에게 주겠다’고 유언장을 썼지만 이는 무효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치매 환자의 후견인이 “금치산자의 법률행위는 무효”라며 소송을 내 이겼기 때문이다.
2012년 3월 A씨는 노환으로 한 달간 병원에 입원했던 70대 노모와 갑자기 연락이 두절됐다. A씨는 가벼운 치매를 앓고 있던 어머니를 걱정해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다. 그는 어머니가 자신의 남동생 집에 머무는 것을 확인했다. A씨는 외삼촌에게 어머니와 통화하고 싶다고 했지만 제지당했다.
어머니는 두달 후인 2012년 5월 자신의 남동생에게 ‘모든 재산관리를 동생 2명에게 일임하고 현재 월세 중 400만원과 사후 모든 재산을 동생들에게 준다’는 내용의 약정서와 유언장을 써줬다. 20억원짜리 건물주인 어머니는 매달 월세로 650만원을 받고 있었다.
1년여 뒤 이같은 사실을 알게 된 A씨는 법원에 “어머니를 정신질환으로 판단력을 잃은 ‘금치산자’로 선고해달라”고 청구했다. 이후 법원이 선임한 후견인 C변호사는 A씨의 외삼촌을 상대로 “후견인 동의없이 마음대로 처분한 재산을 원상복구하라”며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6부(부장판사 윤강열)는 “약정서와 유언장을 쓸 당시 치매 증상이 상당히 진행돼 그 법률적 의미와 효과를 이해하지 못했다”며 “약정서와 유언장은 무효이며 건물 매매는 취소하고 새로 한 소유권등기도 말소하라”고
재판부는 치매 치료로 수입이 필요했던 A씨 어머니가 재산권을 갑자기 동생들에게 넘기거나 재산상속에서 아들을 배제할 합리적 이유가 없다고 봤다. 약정서와 유언장은 어머니가 직접 쓰지 않았거나 판단 능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서명만 했을 것으로 판단했다.
[이현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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