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1211차 수요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돌아가신 위안부 할머니들의 사진을 들고 일본 정부의 공식 사죄를 촉구하고 있다. <김호영 기자> |
30일 정오 찬 바람이 쌩쌩 부는 궂은 날씨에도 거리에 나온 할머니들의 눈에는 결연함이 가득했다.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건너편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열린 올해 마지막 수요집회다.
집회에 참석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88)와 이용수 할머니(88)는 지난 28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의 위안부 문제 협상 결과에 대해 단호하게 비판했다.
이 할머니는 “협상 직전까지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협상이 있느냐. 우리 정부는 뭘 하는 거냐. 너무 분하고 억울하고 서럽다”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돌아가신 다른 할머니들 한을 풀어 드리기 위해서라도 일본의 공식적 사죄와 법적 배상을 받아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강단 있는 목소리로 양국 정부를 비판하던 할머니들은 일제의 만행을 증언할 때는 평생의 한이 서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시민단체와 대학생들 역시 이 자리에 함께해 할머니들의 뜻을 지지했다. 수요집회를 주최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는 이날 성명서를 통해 “한일 정부는 졸속 합의를 즉각 취소하고 피해자들의 요구에 귀 기울여 피해자들이 수용할 수 있는 올바른 방법으로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라”고 촉구했다. 이미향 정대협 대표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정의로운 해결을 위한 세계행동을 시작할 것”이라며 “미국, 유럽, 아시아의 국제시민단체와 함께하는 연대체를 만들 겠다”고 밝혔다. 또 “국내 시민사회·전문가·시민들로 구성된 조직을 만들어 전국 각지의 평화비 앞에서 매주 릴레이 수요집회를 확대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위안부 관련 대학생 단체 ‘평화나비 네트워크’의 김샘 대표는 “회담 결과를 듣고 2년 간 매주 수요시위에 나왔던 저도 너무 마음이 아팠는데, 25년 간 싸워오신 할머니들은 얼마나 마음 아프고 화가 나셨겠느냐”며 “끝까지 할머니들과 함께 싸워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집회에 참석한 이화여고 학생들 역시 “24년째 용기를 내서 활동하시는 할머니들이야말로 살아있는 역사교과서”라며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올바른 사실을 알리겠다”고 밝혔다.
1211번째로 열린 이날 집회는 올해 세상을 떠난 위안부 피해 할머니 아홉 분의 넋을 기리는 추모제로 진행됐다. 경찰 추산 총 700여명이 참석해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수요집회에 앞서 민주주의국민행동, 역사정의실천연대 등은 같은 곳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이번 합의는 전적으로 일본 요구를 받아들이고 국가의 이름으로 면죄부를 내준 굴욕적인 제2의 한일협정”이라며 협상 폐기를 촉구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은 이번 위안부 문제 타결 발표문이 국제법상 조약인지 신사협정인지 판단하기 위해 외교부에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국민의 소송 권한을 제약하는 중대한 내용의 협상인 만큼 합의의 성격이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송기호 민변 국제통상위원장은 “(합의문 형태의) 서면 형식이 없다면 이번 발표는 신사협정에 불과한 것으로 봐야 한다”며 “국제법상 조약은
현재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모두 46명. 올해에만 황선순·이효순·김외한·김달선·김연희·최금선·박유년·최갑순 등 아홉 분이 사망했다.
[백상경 기자 / 김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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