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부모님께 맞고 자랐다. 원래 애들은 맞으면서 크는거다”
한국 사회에 만연한 가장 후진적 인식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같이 아동을 대하는 자세다. 내가 이렇게 맞으며 힘들게 컸지만 결과적으로 잘 살고 있으니 너희도 괜찮다는 식의 근거 없는 논리다. 이렇게 아동 학대를 정당화하는 기저에는 암울했던 경험에 대한 일종의 보상심리, 나아가 아동을 자율적 주체가 아니라 훈육이 필요한 객체로 여기는 폭력적 시각이 깔려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19일 매일경제신문이 인터뷰한 범죄심리·사회학·아동 전문가들은 시대에 뒤떨어진 아동 인식이 ‘부천 초등학생 시신 토막 유기사건’을 낳은 사회적 원인이라고 입을 모았다. 시신 훼손과 유기 과정에서 드러난 표면적인 잔혹성 뒤편에는 한국 사회가 내재한 ‘폭력의 대물림’이 숨어있었다는 얘기다.
최 모군(2012년 사망, 당시 7세)의 시신을 유기한 아버지 최 모씨(34)는 “나도 초등학교시절부터 어머니에게 체벌을 받다가 다친 경우가 많지만 병원에 간적은 없다”고 진술했다. 경찰 조사결과 최씨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상습적인 체벌을 받으며 성장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 군의 어머니 한 모씨(34) 역시 부모의 방임과 무관심 속에서 자란 것으로 조사됐다. 박상진 한국범죄심리학회 이사는 “가해 부모의 경우 불우한 경험이 계속 쌓이면서 학대와 방임이 마치 당연한 것으로 내재화됐을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각종 미디어를 통해 노출된 끔찍한 유사 사건의 간접 경험이 자신의 과거 경험과 결부되면서 죄책감·도덕심이 사라지고, 흉악한 범죄로도 이어지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명숙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부회장은 “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아직도 아동을 자신이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해 체벌에 관대하다”며 “이같은 문화가 유영철, 조두순 같은 연쇄 살인범이나 울산 칠곡 계모사건, 가깝게는 지난해 인천 여아 학대 사건같이 ‘나도 불우한 환경에서 자랐다’고 주장하는 범죄자들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점점 각박해지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 역시 사태를 더욱 극단적인 양상으로 떠밀었다는 분석도 나왔다. 김문조 고려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국민대통합위원회 조사 결과 등을 보면 한국 사람들의 의식은 이제 단순한 불만 차원을 넘어 무조건적 반감과 절망·적개심으로 진화하고 있다”며 “가정·직장 등에선 갈수록 언어·신체·제도적 폭력이 늘고, 사회적 억압과 무시·냉대 속에 커진 좌절감과 분노가 불규칙하게 폭발하는 사건 많아지는 양상”이라고 진단했다.
느슨한 사회 시스템도 화를 키운 요인으로 거론됐다. 유관 기관들이 각자 자기 소관에만 집중하다 보니 책임을 면하는 정도의 ‘면피 행정’에만 급급했다는 지적이다. 이봉주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학교는 공문을 보냈는데 답이 없으니까 종결하고, 지자체도 별다른 조치를 안 하고, 이런 식으로 주어진 책임만큼만 일하다 보니 선제적인 아동 학대 예방 조치가 안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아동들의 최후 안전판 역할을 해야한 교육기관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문제가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학교에서도 배제되면 갈 곳이 없어진다”며 학교의 책무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부모와 자녀 사이에 일어나는 불상사를 예방할 최후의 보루는 학교”라며 “학교가 소위 ‘말썽꾸러기’ ‘문제아’로 아이들을 낙인찍고 내쫓는 행태가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아동 학대에 무감각한 사회 분위기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아동 학대를 막기 위한 정부기관 별 연계 시스템을 마련하고, 특히 친권자에게 관대한 사회 분위기를 뒤집어야 이번 부천 초등학생 시신 유기 사건 같은 범죄가 사라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명숙 부회장은 “아동 학대·방임이 의심되면 경찰·사회복지사가 곧바로 조사하고, 학부모가 저항할 경우 구속 등 강제력 있는 법 집행이 가능하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며 “아동을 학대한 친권자에게 집행유예 등을 주
[백상경 기자 / 강영운 기자 / 김희래 기자 / 박윤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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