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에 필라테스 센터를 개업 준비 중이었던 김지호 씨(41)는 센터 로고를 만드는데 ‘재능거래 사이트’를 활용해 보라는 지인들의 조언을 받았다. 간단한 로고 제작에 수십만원을 쓰기 부담스러웠던 김 씨는 전문가 수준은 아니지만 합리적 비용으로 로고 제작이 가능한 재능거래 사이트를 활용키로 하고 A재능거래 사이트에 접속했다. 디자인 포트폴리오를 올려놓은 한 재능 판매자에게 로고 디자인을 맡기기로 하고 A사이트 운영업체에 5만 원을 입금했다. 하지만 김 씨는 곧 당혹했다. 입금과 동시에 ‘재능머니’가 충전되면서 재능 판매자의 연락처를 제공받는 구조인데 아무리 확인해도 재능머니가 충전되지 않았다. 뭔가 잘못됐다고 직감한 김 씨는 사이트에 게재된 주소지를 찾아갔으나 사무실 문은 굳게 닫혀 있었고 그 누구도 만날 수 없었다.
최근 재능거래 사이트에서 사기 피해를 당했다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사례가 빈번하게 발생해 관계당국의 대책 마련이 요구된다.
재능거래 사이트는 다양한 재능을 지닌 재능 판매자와 이를 활용하려는 재능 구매자를 연결해주는 온라인 플랫폼이다. 문서 번역, 로고 디자인·제작, 블로그 관리, 소셜 마케팅, 심지어는 냉장고 청소 등 거의 모든 종류의 용역이 서비스된다. 용돈벌이를 하려는 취업준비생과 주부 또는 투잡을 하려는 직장인들의 재능 ‘공급’과 싼 비용에 용역을 사려는 ‘수요’가 맞아떨어지면서 업체 수는 급증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중개 대가로 약 20%의 수수료를 챙기는 사이트들 중에는 일일 거래량이 2000만 원이 넘는 기업형 업체도 있다. 향후 5년 내 재능거래 시장이 1조 원대로 성장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는 게 업계의 기대이자 관측이다.
문제는 일부 업체들이 제대로 된 운영 시스템을 갖춰놓지 않고 뛰어들어 소비자 피해를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4년 말께부터 서비스를 시작한 J사이트 자유게시판에는 재능 구매자들의 항의 글이 100건이 넘게 등록돼 있다. 제목에는 ‘환불요청’, ‘사기꾼’, ‘전화를 왜 안받느냐’ 등의 문구가 포함돼있다. 재능구매자로부터 대금을 입금받은 뒤 아무런 후속조치를 해주지 않은 것이다. 업체대표 A씨는 결국 지난 12월 한 피해자로부터 사기혐의로 경찰에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J업체는 현재까지도 카드결제·휴대폰결제·실시간 계좌이체 등은 화면에 형식적으로 있을뿐 오로지 무통장입금만 가능하다. 심지어 대금을 결제하기 전에는 용역을 의뢰할 재능 판매자들에게 연락을 취할 수도 없다.
업계 관계자는 “‘공유 경제를 실현한 모델’ 등 재능 거래 사이트에 대한 사회적 평가에 편승해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운영되는 업체들이 있다”며 “이로 인해 시장 전체의 신뢰 문제가 야기되지 않을까 염려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아울러 다중피해 사기사이트의 경우 경찰이 집중수사를 펼쳐 사이트를 차단하는 선제적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재능 거래 사이트는 신생 사업모델이어서 정부와 경찰의 대처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상황이다.
[연규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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